신유의 은사
성경 · 개념·용어 · 같은 말: 병 고치는 은사, 치유의 은사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이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 든 '병 고치는 은사'를 말한다. 한국 교회에서는 흔히 '신유의 은사'라고 부른다.
성경 본문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이 여러 은사를 나누어 준다고 설명하면서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그 가운데 하나로 든다(고린도전서 12:9). 이 은사는 같은 장 28절과 30절에도 나온다. 30절의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라는 물음은 모든 신자가 이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신유'(神癒)는 '하나님이 병을 고치심'이라는 뜻의 한자어로, 성경 본문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교회에서 쓰는 말이다.
낱말
그리스어 원문은 '카리스마타 이아마톤'(χαρίσματα ἰαμάτων)이다. '은사'와 '치유' 두 낱말이 모두 복수형이어서, 여러 종류의 치유를 가리킨다고 보거나 그때그때 주어지는 치유 사건을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로 밝힌다(출애굽기 15:26). 엘리야와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살린 일, 나아만이 나병에서 나은 일도 전해진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병 고침은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표지로 나타난다. 예수가 보낸 열두 제자도 병자를 고쳤다(마가복음 6:13).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가 성전 미문 앞의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키고(사도행전 3장),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고친다(사도행전 28:8).
그러나 바울은 동역자 드로비모를 병든 채 밀레도에 남겨 두었다(디모데후서 4:20). 에바브로디도가 죽을 만큼 앓은 일도 적었고(빌립보서 2:27), 자신의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고린도후서 12:7-10). 야고보서 5:14-15는 병든 사람이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권한다.
해석과 논점
이 은사가 오늘날에도 있는지는 은사 중지론과 지속론의 핵심 쟁점이다.
- 중지론: 개혁주의 전통의 일부가 이 입장을 취하며, 대표적인 인물은 B. B. 워필드이다. 이들은 병 고침과 같은 표적 은사가 사도 시대에 복음의 계시를 확증하는 역할을 마치고 그쳤다고 본다. 다만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병을 고치실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에게 늘 지니는 능력으로 주어지는 은사가 지금도 있다는 주장이다.
- 지속론: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는 이 은사가 오늘도 계속된다고 본다. 성결교의 사중복음(중생·성결·신유·재림)과 순복음 교회의 오중복음에도 신유가 들어 있다.
- 치유와 속죄: 일부 오순절 계열은 이사야 53:5와 마태복음 8:17을 근거로 병 고침이 그리스도의 속죄에 포함된다고 본다. 반대하는 쪽은 몸의 완전한 회복은 부활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본문은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이 원할 때마다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병이 낫지 않는 것이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앞에서 본 바울 동역자들의 사례를 들어 반론이 제기된다. 의료를 거부하고 신유만 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러 교단에서 경계해 왔다.
한국 교회에서
1920년대 김익두는 부흥회에서 병 고침의 사역으로 널리 알려졌고, 이를 둘러싸고 장로교 안에서 찬반 논란이 있었다. 이후 기도원 집회와 안수 기도, 신유 집회는 한국 교회 부흥 운동의 한 흐름이 되었다. 조용기가 이끈 순복음 운동도 신유를 강조했다. 한편 일부 집회의 과장된 치유 선전이나 치유를 헌금과 결부시키는 일은 교회 안팎에서 비판을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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