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역사
헬레니즘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기원전 4세기) 뒤 그리스 언어와 문화가 지중해 동부와 서아시아에 퍼져 현지 문화와 섞인 현상과 그 시대를 가리킨다.
배경
헬레니즘이라는 말은 그리스인이 스스로를 부른 이름 '헬렌'에서 왔다. 개역개정 성경이 그리스를 '헬라', 그리스 사람을 '헬라인'이라고 옮긴 것도 같은 말에서 나왔다. 19세기 독일 역사가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이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시대를 가리키는 말로 쓰면서 널리 퍼졌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재위 기원전 336~323년)는 바사(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애굽(이집트)에서 인도 서북부에 이르는 땅을 차지했다.
전개
- 제국의 분할: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바벨론에서 죽자 장군들이 제국을 나누어 가졌다. 대표적인 왕조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이다.
- 그리스식 도시와 공용어: 새 왕국들은 각지에 그리스식 도시를 세우고 체육관(김나지움)과 극장을 지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디옥이 대표적인 중심지였다. 코이네('공통의'라는 뜻) 그리스어가 넓은 지역의 공용어가 되었다.
- 유대 땅: 유대는 처음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200년 무렵 셀레우코스 왕조로 넘어갔다. 안티오코스 4세(재위 기원전 175~164년) 때 예루살렘에 체육관이 세워졌다. 기원전 167년에는 유대 율법 준수가 금지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 제사가 드려졌다. 이 일로 마카베오 혁명이 일어났고, 기원전 164년 성전이 다시 봉헌되었다.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수전절(하누카)이다(요한복음 10:22). 이 과정은 천주교가 제2경전으로, 개신교가 외경으로 분류하는 마카베오기에 기록되어 있다.
- 마무리: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을 거쳐 기원전 30년 이집트가 로마에 편입되면서 정치적 의미의 헬레니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헬레니즘 문화는 로마 제국 동부에서 계속 이어졌다.
결과와 영향
- 기원전 3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 모세오경부터 그리스어 번역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번역이 칠십인역이다.
- 그리스어를 쓰는 헬라파 유대인이 생겨났고(사도행전 6:1),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유대 신앙을 그리스 철학의 언어로 설명했다.
- 신약성경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바울은 그리스어권 도시의 회당을 거점으로 전도했고, 아덴에서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들과 토론했다(사도행전 17:18). 요한복음 1장의 로고스도 당시 독자에게 익숙한 철학 용어였다.
- 초대교회의 영지주의 논쟁과 교부들의 교리 정리도 헬레니즘 철학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평가
- 복음의 준비로 보는 견해: 공용어와 칠십인역이 복음이 빠르게 퍼지는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한국 교회 설교에서는 "때가 차매"(갈라디아서 4장 4절)와 연결해 자주 설명한다.
- 복음의 헬라화 비판: 독일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나크는 초기 교회의 교리가 복음을 그리스 철학으로 '헬라화'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는 교부들이 철학 용어를 빌리되 내용은 성경에 따라 고쳐 썼다는 반론이 있다.
- 히브리적 사고와 헬라적 사고: 한국 교회의 설교와 성경공부에서는 두 사고방식을 대비하는 설명이 널리 쓰인다. 그러나 제임스 바(James Barr) 등은 이것이 언어 차이를 사고방식 차이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다니엘서 해석: 많은 해석자는 다니엘 11장의 '북방 왕'과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안티오코스 4세와 연결한다. 이 표현은 예수의 말씀에도 나온다(마태복음 24장 15절). 보수적 해석은 이 부분을 미리 주어진 예언으로 보고, 역사비평학계는 다니엘서가 기원전 2세기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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