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역사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 그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집트에 세운 그리스계 왕조(기원전 305년 무렵~기원전 30년)이다. 한때 유대 땅을 다스렸고, 칠십인역 번역의 배경이 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배경
기원전 32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그가 정복한 넓은 땅은 부하 장군들 사이에서 나뉘었다. 이 장군들을 '디아도코이'(후계자들)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의 총독이 되었고, 기원전 305년 무렵 스스로 왕의 칭호를 썼다. 그가 세운 왕조는 시조의 이름을 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라고 부른다. 남자 왕들은 대대로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을 썼다.
이 왕조는 그리스어를 쓰는 마케도니아·그리스계 지배층이 이집트를 다스린 나라였다. 왕들은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전통적인 파라오의 모습으로 자신을 내세웠다. 그리스 문화가 동방 세계로 퍼져 현지 문화와 섞인 현상을 '헬레니즘'이라고 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전개
- 기원전 305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왕위에 올랐다. 수도는 알렉산드로스가 세운 항구 도시 알렉산드리아였다.
- 기원전 301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유대를 포함한 남부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했다. 이후 약 한 세기 동안 예루살렘과 유대 땅은 이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2세 시기에 알렉산드리아에 학술 기관인 무세이온과 대도서관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세계의 학문 중심지가 되었다.
- 기원전 3세기~2세기: 북쪽의 셀레우코스 왕조와 남부 시리아·팔레스타인을 두고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들을 흔히 '시리아 전쟁'이라 부른다. 기원전 217년 라피아 전투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를 물리쳤다.
- 기원전 200년 무렵: 파니온 전투에서 안티오코스 3세에게 패했다. 이로써 유대 땅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로 넘어갔다.
- 기원전 2세기~1세기: 왕실 안의 다툼이 이어지고 로마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왕조가 약해졌다.
- 기원전 31년~30년: 마지막 통치자 클레오파트라 7세는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손잡았다. 그러나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했고,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가 죽으면서 왕조는 끝났다. 이집트는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결과와 영향
교회사와 성경 연구에서 이 왕조는 무엇보다 칠십인역과 관련해 기억된다.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이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는 고대 문헌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유대 학자 72명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율법을 번역했다고 전한다. 학계는 이 이야기의 세부 내용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적어도 모세오경이 기원전 3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칠십인역은 그리스어를 쓰는 유대인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널리 읽었다. 신약성경이 구약을 인용할 때에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알렉산드리아에는 큰 유대인 공동체가 생겼다. 이들은 그리스어를 쓰며 유대 신앙을 지킨 헬라파 유대인의 중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사도행전 18:24에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 아볼로가 등장한다.
또 다니엘 11장의 '남방 왕'과 '북방 왕'의 다툼을 많은 해석자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전쟁으로 읽는다. 다만 이 본문을 어떻게 보는지는 입장마다 다르다. 전통적·보수적 해석은 이를 앞일을 미리 내다본 예언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역사비평 학계의 다수는 다니엘서가 기원전 2세기에 쓰였다고 보고, 이 본문을 그 시대의 역사를 반영한 기록으로 이해한다.
평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약 300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렸다. 이 기간에 그리스 문화와 이집트·유대 전통이 만나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경 연구에서는 신구약 중간기, 곧 구약 마지막 책과 신약 사이의 시기를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왕조로 다뤄진다. 특히 유대 땅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셀레우코스 왕조로 넘어간 일은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해와 마카비 항쟁, 그리고 수전절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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