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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

성경 · 지명 · 같은 말: 아테네

아덴은 그리스 아티카 지방의 도시로, 오늘날의 아테네이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머물며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한 곳으로 사도행전 17장에 나온다.

성경에 나오는 곳

아덴은 주로 사도행전 17:15-34에 나온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반대를 받은 뒤 형제들의 배웅을 받아 아덴에 왔다. 그는 실라와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전하고 그들을 기다렸다(사도행전 17:15). 바울은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였다(사도행전 17:16). 그래서 회당에서는 유대인들과,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를 "말쟁이"라 하였고, 어떤 이들은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려가 그의 가르침을 들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말머리로 삼았다(사도행전 17:23). 그리고 다음 내용을 차례로 전하였다.

  •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신전에 계시지 않는다.
  •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 지으셨다.
  • 이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명하신다.
  • 정하신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사람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자 어떤 사람은 조롱하고 어떤 사람은 다시 듣겠다고 하였다.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를 비롯한 몇 사람은 믿었다(사도행전 17:34). 그 뒤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갔다(사도행전 18:1). 데살로니가전서 3:1-2에도 바울이 아덴에 머물며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다는 언급이 있다.

배경

아덴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다. 철학과 연극, 민주정의 전통으로 이름이 높았다. 도시 이름은 수호 여신 아테나와 연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아가야 지방에 속했고, 정치·상업의 중심은 고린도로 옮겨 간 상태였다. 그래도 아덴은 여전히 학문의 도시로 여겨졌다. 누가는 아덴 사람들과 그곳의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일에만 시간을 쓴다고 적었다(사도행전 17:21).

아레오바고는 그리스어로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크로폴리스 서북쪽의 바위 언덕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모이던 의회의 이름이기도 하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아덴 설교는 유대인 회당이 아니라 성경을 모르는 이방인 지식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례로 사도행전에 실렸다.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는 대신 창조주 하나님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또 헬라 시인들의 말을 빌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고 하였다(사도행전 17:28). 이 인용은 아라토스의 시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교의 흐름은 로마서 1장 18-25절의 내용과 자주 함께 읽힌다. 창조 세계로 드러나는 하나님과 우상 숭배를 다루기 때문이다.

해석과 논점

  • 아레오바고의 뜻: 바울이 언덕이라는 장소에서 말한 것인지, 아레오바고 의회 앞에서 공식 심문을 받은 것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 설교의 성패: 일부 해석자는 고린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는 말(고린도전서 2장 2절)을 근거로 든다. 이들은 바울이 아덴에서의 철학적 접근을 반성했다고 본다. 다른 해석자들은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가가 이 설교를 모범적인 연설로 실었고 믿은 사람도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 접촉점 논의: 이방 종교심과 시인의 말을 복음의 출발점으로 삼은 점은 일반계시·일반 은총·자연신학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신학 전통에 따라 이를 적극적인 접촉점으로 보기도 하고, 반대로 우상 숭배에 대한 비판에 무게를 두어 읽기도 한다.
  • 후대 전승: 디오누시오가 아덴의 첫 감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초대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오스의 기록에 전해지지만, 성경 본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5~6세기에 그의 이름으로 퍼진 신비신학 문헌은 후대의 저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아덴 설교는 불신자 전도와 기독교 변증(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변호하는 일)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특히 문화와 학문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본보기로 쓰인다. "알지 못하는 신"과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사도행전 17:22)는 설교에서 널리 쓰이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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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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