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성경 · 지명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지협에 있던 로마 시대의 항구 도시이다. 바울이 이곳에 교회를 세웠고, 이 교회에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를 보냈다.
성경에 나오는 곳
고린도는 바울이 두 번째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그리스의 도시이다. 사도행전 18장에 따르면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왔다. 그곳에서 같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지내며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가르쳤다.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함께 믿었고, 바울은 이곳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다(사도행전 18:11). 유대인들이 바울을 아가야 총독 갈리오에게 고발했으나, 갈리오는 유대인의 율법 문제라며 재판을 거절했다(사도행전 18:12-17). 뒤이어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사역했다(사도행전 19:1).
바울이 이 교회에 보낸 편지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이다. 로마서 16장에 가이오와 에라스도가 언급되는 점 등을 근거로, 로마서도 고린도에서 쓰였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고린도의 동쪽 항구 겐그레아에는 뵈뵈가 섬기던 교회가 있었다(로마서 16:1).
배경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두 땅을 잇는 잘록한 땅)에 자리한다. 서쪽의 레카이온, 동쪽의 겐그레아 두 항구를 끼고 있어 동서 무역의 길목 구실을 했다. 기원전 146년 로마군에게 파괴되었고,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 식민도시로 다시 세웠다. 바울 시대에는 로마 아가야 속주의 중심 도시였다. 상인, 해방노예, 유대인 등이 섞여 사는 국제도시였으며 이스트미아 경기가 열리던 곳이다. 그래서 운동 경기에 빗댄 고린도전서 9:24-27을 이 배경과 연결해 읽기도 한다.
델포이에서 발견된 비문에 갈리오의 이름이 나온다. 학계는 이 비문을 근거로 갈리오의 총독 재임을 대체로 51~52년 무렵으로 보며, 이 시기를 바울 생애의 연대를 정하는 기준점으로 삼는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고린도 교회는 신약에서 사정이 가장 자세히 알려진 초대 교회 가운데 하나이다. 고린도전서에는 이방 도시의 교회가 겪은 여러 문제가 담겨 있다.
바울은 이 문제들에 답하면서 사랑장(13장)과 부활장(15장) 같은 본문을 남겼다. 고린도후서에서는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헌금)를 권했다(8-9장).
해석과 논점
- '신전 여사제 천 명' 이야기: 고린도가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다는 설명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에 천 명의 여사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따라붙는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본의 기록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 기록은 로마에 파괴되기 전의 옛 고린도에 관한 것이고 사실성에도 논란이 있어, 바울 시대의 고린도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성경 본문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 편지의 수: 고린도전서 5:9와 고린도후서 2:4는 지금 전하지 않는 편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를 근거로 바울이 고린도에 적어도 네 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고린도후서가 여러 편지를 하나로 묶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의견이 갈린다.
- 오늘날의 논쟁과 연결되는 본문: 고린도전서 12-14장의 방언·예언 본문과 여성의 침묵 구절(14:34-35)은 은사 중지론과 지속론, 여성 안수 논쟁에서 핵심 본문으로 다루어진다. 오순절·은사주의 교회는 이 본문을 은사가 오늘도 계속된다는 근거로 읽는다. 은사 중지론을 따르는 일부 개혁주의 진영은 예배의 질서와 계시의 완성을 강조하는 맥락으로 읽는다.
한국 교회에서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은 결혼예배에서 자주 봉독된다. 설교에서는 분열과 갈등을 겪는 교회를 '고린도 교회'에 빗대어 말하는 일이 많다. 이때 문제가 많았던 교회인데도 바울이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고린도전서 1:2)라고 부른 점을 함께 강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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