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시야
인물 · 성경 인물 · 같은 말: 아사랴 (유다 왕), 아사랴 (웃시야)
웃시야는 기원전 8세기 남유다의 왕으로, 열왕기하에서는 아사랴로 불린다. 오래 다스리며 나라를 강하게 했으나, 성전에서 분향하려다 나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따로 살았다.
성경의 기록
웃시야의 생애는 열왕기하 14:21–22과 15:1–7에 '아사랴'라는 이름으로, 역대하 26장에 '웃시야'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아버지는 아마샤이고 어머니는 예루살렘 출신 여골리야이다.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 쉰두 해 동안 다스렸다고 기록된다(열왕기하 15:2).
역대하는 그가 선지자 스가랴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찾았고,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적는다(역대하 26:5). 그는 블레셋을 쳐서 가드·야브네·아스돗의 성벽을 헐었고,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이겼으며, 암몬 사람에게서 조공을 받았다. 또 엘랏을 건축해 유다에 되돌렸다. 나라 안에서는 예루살렘과 광야에 망대를 세우고 우물을 팠다. 성경은 그가 농사를 좋아했다고 적는다. 군대도 정비했는데, 화살과 큰 돌을 쏘는 기계를 만들어 성에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라가 강성해지자 그는 마음이 교만해졌다(역대하 26:16).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 했다. 이때 제사장 아사랴와 여든 명의 제사장이 막아서며, 분향은 아론 자손 제사장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역대하 26:18). 왕이 화를 내자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그는 죽는 날까지 별궁에 따로 살았고, 아들 요담이 왕궁을 다스렸다. 그가 나병 환자였기 때문에 왕들의 묘실이 아니라 그 곁의 묘지에 장사되었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웃시야의 시대는 이사야 1:1, 호세아 1:1, 아모스 1:1에서 예언 활동의 시점을 밝히는 기준으로 쓰인다. 아모스 1:1의 "지진 전 이 년"과 스가랴 14:5는 그의 때에 일어난 큰 지진을 기억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은 환상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로 시작한다(이사야 6:1). 역대하 26:22는 그의 행적을 이사야가 기록했다고 적는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8–9의 예수 족보에 이름이 나온다. 이 족보는 요람과 웃시야 사이의 아하시야·요아스·아마샤 세 왕을 빼고 있다. 이를 두고 족보를 열네 대씩 맞추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 등 여러 해석이 있다.
해석과 논점
- 두 이름: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우셨다', 웃시야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왜 이름이 둘인지를 두고는 즉위할 때 받은 이름과 본래 이름이라는 견해 등 설명이 다양하다.
- 징벌의 이유: 열왕기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고 그가 나병에 걸렸다는 사실만 적는다. 역대하는 교만과 월권적 분향을 원인으로 든다. 장로교 전통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국가 위정자가 말씀과 성례를 맡을 수 없다는 대목의 근거 구절 가운데 하나로 역대하 26:18을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이 본문은 왕과 제사장의 직무 구분을 말할 때 사울이 번제를 드린 사건(사무엘상 13장)과 함께 자주 인용된다.
- 나병: 히브리어 '차라아트'는 오늘날의 한센병보다 넓은 피부병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 연대: 아버지 아마샤나 아들 요담과 함께 다스린 기간(공동 통치)이 있었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이 때문에 연대 계산은 학자마다 다르다.
- 덧붙여 전해지는 이야기: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는 그가 분향하려 할 때 지진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성경 본문은 두 사건을 연결하지 않는다. 또 "유다 왕 웃시야의 뼈를 이리로 옮겼다"는 내용의 후대 아람어 비문이 전해지는데, 제2성전 시대에 유골을 옮겨 묻은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 웃시야는 형통할 때 교만해진 사람의 예로 자주 쓰이며, 역대하 26:5와 26:16이 함께 인용된다. 이사야 6:1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는 의지하던 사람을 잃은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는 내용의 설교 본문으로 널리 쓰인다. 또 직분의 경계와 질서를 강조할 때 본보기로 언급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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