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샤
인물 · 성경 인물 · 같은 말: 아마샤 (유다 왕), 유다 왕 아마샤
아마샤는 남유다의 아홉째 왕으로, 요아스의 아들이자 웃시야의 아버지이다. 에돔을 이긴 뒤 에돔의 신들을 섬겼고, 북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다가 크게 패했다.
성경의 기록
아마샤는 남유다의 왕이다. 아버지 요아스가 신하들에게 살해된 뒤 왕위를 이었다(열왕기하 12:21, 역대하 24:27). 주된 기록은 열왕기하 14:1-22과 역대하 25장이다. 이름의 뜻은 흔히 "여호와는 강하시다"로 풀이된다.
- 즉위: 2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29년 동안 다스렸다. 어머니는 예루살렘 사람 여호앗단이다(열왕기하 14:2). 성경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한다(역대하 25:2). 산당(지방의 제단)도 없애지 않았다.
- 아버지의 원수 처벌: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처형했지만 그 자녀는 죽이지 않았다. 성경은 이것이 모세의 율법을 따른 것이라고 밝힌다(열왕기하 14:5-6, 신명기 24장 16절 인용).
- 에돔 원정: 북이스라엘에서 용병 10만 명을 은 100달란트에 고용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말리자 그들을 돌려보냈다. 돌아가던 용병들은 유다 성읍들을 약탈했다(역대하 25:6-13). 아마샤는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을 크게 이기고 셀라를 빼앗아 이름을 욕드엘로 바꾸었다.
- 우상 숭배와 패배: 승리한 뒤 에돔의 신상들을 가져와 섬겼다. 이를 꾸짖는 선지자의 말은 듣지 않았다(역대하 25:14-16). 이어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싸움을 걸었다. 요아스는 가시나무와 백향목의 비유로 그를 만류했지만 아마샤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벧세메스 전투에서 패해 사로잡혔다.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벽 400규빗을 헐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과 인질을 빼앗아 갔다.
- 죽음: 예루살렘에서 반역이 일어나자 라기스로 도망했으나 그곳에서 살해되었다. 시신은 예루살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아들 웃시야(열왕기하에서는 아사랴)가 16세에 뒤를 이었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역대하는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린 때부터 반역이 시작되었다고 적는다(역대하 25:27). 이처럼 그의 생애는 처음에는 순종했으나 끝까지 지키지 못한 왕의 예로 그려진다.
신약에는 아마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 마태복음 1:8의 예수 족보는 요람에서 곧바로 웃시야로 넘어간다. 그 사이의 아하시야·요아스·아마샤 세 왕이 빠져 있는 것이다.
해석과 논점
- 족보에서 빠진 이유: 해석이 갈린다. 14대씩 맞추려고 줄였다는 설명이 있다. 아합 집안과 혼인으로 이어진 왕들을 의도적으로 뺐다는 전통적 설명도 있다. 본문은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 연대 문제: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보다 15년을 더 살았다는 기록(열왕기하 14:17)과 통치 기간을 맞추는 방식은 학자마다 다르다. 웃시야와의 공동 통치를 상정하는 견해도 있다.
- 이름이 같은 인물: 아모스서에 나오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아모스 7:10-17)는 다른 사람이다. 그는 아모스를 쫓아내려 했다. 역대상 족보 등에도 같은 이름의 인물이 나온다.
- 이름이 같은 왕: 아마샤의 아버지와 그를 이긴 이스라엘 왕은 개역개정에서 모두 "요아스"로 표기된다. 그래서 두 사람을 혼동하기 쉽다.
한국 교회에서
아마샤 본문을 설교할 때는 주로 두 대목이 다뤄진다. 하나는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역대하 25:2)는 평가이다. 다른 하나는 용병을 돌려보내라는 권고와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역대하 25:9)라는 말씀이다. 승리 뒤의 교만과 우상 숭배도 경계의 예로 언급된다. 교회학교 공과나 찬양에서 단독 주제로 다뤄지는 일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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