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다
성경 · 지명
남유다는 솔로몬이 죽은 뒤 이스라엘 왕국이 갈라졌을 때 예루살렘을 수도로 남쪽에 남은 나라로, 성경은 흔히 "유다"라고 부른다. 바벨론에 멸망할 때까지 다윗의 자손이 왕위를 이었다.
성경 속 남유다
성경 본문은 이 나라를 대개 "유다"라고 부른다. "남유다"는 북쪽의 이스라엘, 곧 "북이스라엘"과 구별하려고 한국 교회에서 널리 쓰는 이름이다.
열왕기상 12장은 나라가 갈라진 과정을 기록한다(왕국 분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자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떨어져 나갔고,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르호보암에게 남았다. 이후 열왕기하 25장까지는 남북 두 나라의 역사를 번갈아 적는다. 역대하 10~36장은 남유다를 중심으로 이 시기를 다시 기록한다. 남유다의 역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무너뜨리고 시드기야를 끌고 간 일로 끝난다(열왕기하 25장).
배경
"유다"는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서 온 지파 이름이다. 창세기 29:35는 레아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며 이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보다 땅이 좁았지만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했다. 역대하 11:13-14는 북쪽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유다로 옮겨 왔다고 전한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뒤에도(북이스라엘 멸망) 남유다는 백여 년을 더 이어졌다. 분열과 멸망의 연대는 학자마다 계산이 다르다. 대체로 분열은 기원전 10세기 후반, 예루살렘 함락은 기원전 587년 또는 586년으로 본다.
왕들과 선지자
북이스라엘은 왕조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남유다는 왕위를 빼앗은 여왕 아달랴(열왕기하 11장)를 빼면 다윗의 자손이 줄곧 왕위를 이었다. 열왕기는 각 왕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또는 "악을 행하였다"로 평가한다.
- 개혁한 왕: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등이 꼽힌다.
- 악하게 평가된 왕: 므낫세와 그 아들 아몬은 우상 숭배로 악하게 평가된다(열왕기하 21장).
- 히스기야: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공했을 때 기도하여 예루살렘이 구원받은 일로 알려져 있다(열왕기하 18~19장).
- 요시야: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따라 개혁한 일로 알려져 있다(열왕기하 22~23장).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가 남유다에서 회개를 외치고 심판과 회복을 전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성경은 남유다가 오래 남은 까닭을 다윗에게 주신 약속과 잇는다(다윗 언약, 열왕기상 11:36, 15:4). 바벨론 포로 뒤 고레스의 칙령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주로 유다 사람이었다(에스라 1장). "유대인"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신약도 이 흐름을 잇는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의 족보를 다윗과 유다 왕들을 거쳐 잇는다. 히브리서 7:14는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라고 쓰고, 요한계시록 5:5는 예수를 "유다 지파의 사자"로 부른다.
해석과 논점
열왕기와 역대기가 같은 왕을 다르게 그리는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역대하 33장은 므낫세가 포로로 끌려간 뒤 회개했다고 전하지만, 열왕기하에는 이 내용이 없다. 비평학자들은 두 책의 관점과 목적이 달라서 생긴 차이로 설명한다. 보수적 학자들은 서로 보완하는 기록으로 읽는다.
"북이스라엘은 악했고 남유다는 경건했다"는 식의 요약도 흔히 전해진다. 그러나 본문은 남유다에도 악한 왕이 많았다고 기록한다. 또 멸망의 원인을 유다 자신의 죄에서 찾는다(열왕기하 23:26-27, 24:3-4).
한국 교회에서
설교에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와 요시야의 개혁이 자주 인용된다. 성경통독이나 성경공부에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 목록을 정리해 익히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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