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교부
역사
사도 교부는 사도들과 가까운 시대인 1세기 말~2세기 중엽에 활동한 교회 지도자들과, 그들이 남긴 신약성경 밖의 가장 이른 기독교 문헌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배경
'교부(敎父)'는 '교회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초기 몇 세기 동안 교리와 교회 생활의 틀을 세운 지도자와 저술가를 가리킨다. 그 가운데 사도 교부는 사도들을 직접 알았거나 바로 다음 세대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이들이다. 이 이름은 고대에 쓰인 말이 아니다. 17세기 프랑스 학자 장바티스트 코틀리에가 1672년에 펴낸 문헌 모음집에서 굳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느 문헌을 여기에 넣을지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전개
흔히 사도 교부 문헌으로 묶는 글은 다음과 같다. 연대는 대부분 추정이다.
- 클레멘스의 첫째 편지: 로마 교회가 분쟁 중인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1세기 말, 흔히 96년경에 쓰였다고 보며, 로마의 클레멘스가 썼다고 전해진다.
- 이그나티우스의 편지: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2세기 초 순교하러 로마로 끌려가던 길에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일곱 편이 진본으로 인정된다.
- 폴리카르푸스의 편지와 순교록: 서머나의 감독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와, 2세기 중엽 그의 순교를 기록한 글이다. 이레나이우스는 폴리카르푸스가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고 전한다.
- 디다케: '열두 사도의 가르침'으로 불리는 교회 지침서이다. 187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사본이 발견되어 1883년에 출판되었다.
- 그 밖에 바나바 서신, 헤르마스의 목자, 파피아스 단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 클레멘스의 둘째 편지(설교) 등이 포함된다.
결과와 영향
이 문헌들은 신약성경과 2세기 변증가들 사이 시기의 교회 모습을 보여 주는 드문 자료이다.
디다케는 흐르는 물에 몸을 잠그는 세례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물이 부족하면 머리에 물을 세 번 붓도록 허용한다. 또 주의 날 모임과 성찬, 하루 세 번 드리는 주기도문, 수요일·금요일 금식을 언급한다. 이 대목은 오늘날 세례와 침례 논의에서 양쪽이 모두 인용한다.
이그나티우스는 감독·장로·집사의 세 직분과 감독을 중심으로 한 일치를 강조했다. 예수가 사람의 몸을 가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가현설을 반박했고, '보편 교회'라는 말을 처음 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바나바 서신, 헤르마스의 목자 같은 일부 문헌은 초기 교회 예배에서 읽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정경에 들지 않았고, 4세기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스도 이들을 정경 밖의 책으로 분류했다.
평가
천주교와 정교회는 이 문헌을 사도 전승을 잇는 거룩한 전통의 증언으로 존중한다. 특히 클레멘스의 편지가 사도에게서 감독으로 이어지는 계승을 말한 점을 중시한다. 대한성공회 등 감독제 전통은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를 감독직의 초기 증거로 본다.
장로교에서는 다르게 읽는 해석이 많다. 디도서 1장 5-9절과 클레멘스의 편지에서 '감독'과 '장로'가 같은 직분처럼 쓰인 점에 주목하고, 세 직분 구조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형성되었다고 본다.
일부 개신교 학자들은 사도 교부 문헌이 바울의 은혜와 칭의 강조보다 도덕적 노력과 규범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주로 신학교 교회사 과목에서 다루며, 교단과 관계없이 초대교회를 연구하는 기본 자료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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