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아스
인물
파피아스는 2세기 초 소아시아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으로,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기원에 관한 가장 이른 증언을 남긴 초대교회 저술가이다.
생애
파피아스는 소아시아(오늘날 튀르키예 서부) 프리기아 지방의 도시 히에라폴리스에서 감독(교회를 책임진 지도자)으로 일하였다. 이 도시는 골로새서 4장 13절에 '히에라볼리'로 나온다. 생몰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저술 시기는 대략 110~130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2세기 말의 교부 이레네우스는 그를 "요한의 제자이자 폴리캅의 동료"라고 불렀다. 반면 4세기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스는 파피아스가 사도 요한을 직접 만난 것이 아니라 '장로 요한'이라는 다른 인물에게서 전승을 들었다고 보았다. 어느 견해가 옳은지는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사역과 업적
파피아스는 『주님의 말씀 해설』 다섯 권을 썼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이레네우스와 에우세비오스 등이 인용한 단편만 남아 있다. 그는 책보다 "살아 있고 머물러 있는 목소리"를 더 귀하게 여겼다고 밝혔다. 그래서 사도들을 따르던 장로들에게서 직접 들은 말을 모으려 했다.
남은 단편 가운데 가장 널리 인용되는 것은 복음서의 기원에 관한 진술이다.
- 마가복음: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였으며, 베드로가 가르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정확히 기록하였으나 순서대로 적지는 않았다.
- 마태복음: 마태는 '히브리 방언'으로 말씀(로기아)을 모았고, 사람들은 각자 능력껏 이를 해석하였다.
이 밖에 그가 천년왕국을 문자 그대로 기대하였다는 단편이 있다. 가룟 유다의 죽음에 관한 독특한 전승도 남아 있다. 에우세비오스는 파피아스가 "많은 죄로 고발된 여인" 이야기를 실었다고 전한다. 일부 학자는 이 이야기를 요한복음의 간음하다 잡힌 여인 본문과 연결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쓰는 신약개론, 성경 해설서, 주석에서는 파피아스의 증언을 흔히 다룬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저자를 설명하거나 공관복음 문제(마태·마가·누가복음의 서로 비슷하면서 다른 관계)를 다룰 때 근거로 소개된다. 종말론 논의에서도 그의 이름이 나온다. 역사적 전천년설(그리스도가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한다는 견해)을 지지하는 쪽은 이레네우스와 함께 파피아스를 초대교회에 천년왕국 신앙이 있었다는 사례로 든다. 반면 무천년설 쪽은 초기 교부 일부의 견해일 뿐이라고 본다.
평가
파피아스의 단편은 사도 시대와 가까운 시기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초대교회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그러나 비판도 적지 않다. 에우세비오스는 그의 천년왕국 이해를 두고 "지적 능력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고 혹평하였다. 현대 학자들도 그의 증언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 견해가 나뉜다.
- '로기아'가 지금의 마태복음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예수의 말씀 모음집을 가리키는지
- '히브리 방언'이 히브리어나 아람어라는 언어를 뜻하는지, 아니면 유대적 서술 방식을 뜻하는지
- 마가가 베드로의 통역자였다는 전승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믿을 만한지
보수적인 학자들은 그의 증언을 대체로 신뢰한다. 비평적인 학자들은 2세기 교회의 해석이 섞인 전승으로 보고 신중하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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