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비우스
인물 · 같은 말: 에우세비오스, 에우세비우스,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 카이사레아의 유세비우스
유세비우스(260년경~339년경)는 팔레스타인 가이사랴의 주교이자 초대교회 역사가이다. 『교회사』를 지어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생애
유세비우스는 3세기 후반 로마 제국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생지는 확실하지 않다. 해안 도시 가이사랴에서 학자 팜필루스에게 배웠다. 팜필루스는 오리게네스의 장서를 이어받아 큰 도서관을 꾸린 인물로, 유세비우스는 스승을 기려 '팜필루스의 유세비우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의 대박해(4세기 초)에 팜필루스는 순교했다. 박해가 끝난 뒤 유세비우스는 313년 무렵 가이사랴의 주교가 되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해 가이사랴 교회의 신앙고백문을 제출했고, 공의회가 채택한 신경에 서명했다. 다만 그는 아리우스 쪽에 동정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리우스는 성자가 성부와 같은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공의회 이후 아타나시우스와 대립하는 편에 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가까웠으며, 336년 황제 즉위 30주년 기념 연설을 했다. 339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교회사』: 사도 시대부터 4세기 초까지 교회의 역사를 10권으로 기록했다. 주교들의 계승, 순교, 이단 논쟁, 성경 문헌을 다룬다. 지금은 사라진 파피아스, 헤게시푸스 등의 글을 인용해 보존했다. 예를 들어 글로바가 나사렛 요셉의 형제이고, 그 아들 시므온이 예루살렘 교회의 두 번째 지도자가 되었다는 전승은 헤게시푸스를 인용한 『교회사』를 통해 전해진다.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달렸다는 전승도 오리게네스를 인용해 실었다.
- 정경 논의: 신약성경 책들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널리 인정된 책, 다수가 받아들이지만 논란이 있는 책, 받아들이지 않는 책이다.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등은 논란이 있는 책으로 분류했고, 요한계시록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기록은 정경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 그 밖의 저작: 연대기를 정리한 『연대기』, 성경 지명 사전인 『오노마스티콘』, 네 복음서의 평행 본문을 대조하는 표가 있다. 이 대조표는 '유세비우스 대조표'로 불린다. 이교 사상에 맞서 기독교를 변증한 『복음의 준비』와 『복음의 증명』, 황제를 다룬 『콘스탄티누스의 생애』도 남겼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교회사』는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신학교의 교회사·초대교회 수업에서 1차 사료로 읽힌다. 사도들의 사역지와 순교에 관한 전승도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자주 인용되는데, 이런 전승 상당수가 그의 기록을 거쳐 전해졌다. 다만 이 전승들은 성경 본문이 아니라 후대의 전승이라는 점에서 구별해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가
유세비우스는 사라진 사료를 다수 보존해 '교회사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그의 기록이 없었다면 2~3세기 교회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비판도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생애』는 황제를 지나치게 찬양한 송덕문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는다. 19세기 스위스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그를 매우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학적으로는 아리우스주의에 기울었다는 이유로, 니케아 신경의 정통 입장을 지킨 쪽에서 오랫동안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그는 극단적 아리우스파가 아니라 교회의 화합을 중시한 중도적 인물이었다고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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