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회
역사
로마 교회는 1세기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에 있던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보낸 교회로, 여러 가정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신약성경 시대 로마에 있던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다룬다. 한국어에서 '로마 교회'는 천주교(로마 가톨릭교회)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배경
로마에 누가 처음 복음을 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신약성경에는 어느 사도가 이 교회를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 사도행전 2:10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머물던 사람들 가운데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가 있었다고 적는다. 이들이 돌아가 신앙을 전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당시 로마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컸기 때문에, 복음은 처음에 유대인과 그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것으로 보인다.
전개
- 49년경: 황제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떠나게 했다. 사도행전 18:2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이 일로 고린도에 왔다고 적는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이 추방이 '크레스투스'라는 사람 때문에 일어난 소요와 관련이 있다고 기록했다. 이를 그리스도를 둘러싼 유대인 사회의 갈등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 50년대 후반: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써 보냈다. 흔히 57년경의 일로 본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은 뵈뵈를 추천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유니아, 아벨레, 버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등 스무 명이 넘는 사람에게 안부를 전한다. 로마서 16:5의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처럼, 로마 교회는 하나의 큰 회중이라기보다 여러 가정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60년 무렵: 바울이 죄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했다. 그는 두 해 동안 셋집에 머물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했다(사도행전 28:30-31).
- 64년: 로마에 큰불이 난 뒤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인을 박해했다고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가 기록했다. 베드로와 바울이 네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다.
결과와 영향
1세기 말 로마 교회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흔히 '클레멘스 1서'라 불린다. 2세기 초에는 안디옥의 감독(교회 지도자) 이그나티우스가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 교회는 제국의 수도에 있었고 두 사도가 그곳에서 순교했다는 전승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로마의 감독은 점차 서방 교회에서 큰 권위를 얻었고, 이 흐름은 훗날 교황 제도로 이어졌다.
평가
- 천주교는 베드로를 로마의 첫 주교로 보고, 교황이 그 직위를 잇는다고 가르친다.
- 정교회는 초기 교회에서 로마 주교가 누린 명예상의 으뜸 자리는 인정한다. 다만 이를 온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으로 보는 해석에는 반대해 왔다.
- 개신교는 대체로 이런 계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약성경에 베드로가 로마 교회를 세웠거나 이끌었다는 기록이 없고, 로마서에도 베드로에게 보내는 안부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한편 베드로전서 5:13의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로마를 가리키는 말로 보는 해석은 개신교 안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진다.
- 개신교에서는 로마 교회에 보낸 로마서가 마르틴 루터의 칭의 이해와 종교개혁에 깊은 영향을 준 책으로 꼽힌다.
-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여성 동역자들은 여성 안수 논쟁에서 자주 인용된다.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이 본문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