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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몬 왕조는 기원전 2세기 마카베오 혁명을 계기로 유대를 다스린 유대인 제사장 가문의 왕조이다. 기원전 37년 헤롯이 예루살렘을 차지하면서 끝났다.

배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 유대 지역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이어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다스렸다. 이 시기 유대 사회에는 헬레니즘, 곧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흐름과 이를 거부하는 흐름이 함께 있었다.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 제사를 드리게 하고 할례와 안식일 준수를 금지했다. 이 일은 기원전 167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전개

  • 기원전 167년 무렵: 모데인 마을의 제사장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흔히 마카베오 혁명이라 부른다. '마카베오'는 셋째 아들 유다의 별명으로, '망치'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많다. '하스몬'이라는 왕조 이름은 요세푸스가 전하는 가문의 조상 이름에서 왔다.
  • 기원전 164년: 유다 마카베오가 예루살렘을 되찾고 성전을 정화해 다시 봉헌했다. 이 일을 기념하는 절기가 수전절(하누카)이며, 요한복음 10:22에도 이 절기가 나온다.
  • 기원전 160년 무렵 이후: 유다가 전사한 뒤 동생 요나단이 지도자가 되었고, 기원전 152년 무렵 대제사장직을 받았다.
  • 기원전 142~140년 무렵: 형제 시몬 때 셀레우코스 왕조에 바치던 조공이 면제되면서 사실상 독립을 이루었고, 백성의 회의가 시몬을 지도자이자 대제사장으로 인정했다.
  • 요한 히르카누스 1세(기원전 134~104년): 영토를 넓혀 에돔 사람(이두매인)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그리심산의 사마리아인 성전을 파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아리스토불루스 1세와 알렉산드로스 얀나이오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처음 왕의 칭호를 썼다. 얀나이오스(기원전 103~76년)는 영토를 크게 넓혔지만 바리새인과 심하게 대립했다.
  • 살로메 알렉산드라(기원전 76~67년): 얀나이오스의 아내로, 바리새인과 가깝게 지냈다.
  • 기원전 63년: 두 아들 히르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왕위를 놓고 다투자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개입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때부터 유대는 로마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 기원전 37년: 파르티아의 지원으로 왕이 된 안티고노스가 로마의 후원을 받은 헤롯에게 패하면서 하스몬 왕조는 끝났다.

결과와 영향

하스몬 왕조 시기는 신구약 중간기의 중심 시기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세네파 같은 유대교 무리가 이 무렵 뚜렷한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본다. 사해 사본을 남긴 쿰란 공동체가 하스몬 가문의 대제사장직에 반대했다고 보는 학자도 많다. 헤롯은 하스몬 가문의 마리암네와 혼인해 자기 통치의 정당성을 보강하려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시기를 전하는 주요 자료는 마카베오기 상·하권과 요세푸스의 저작이다. 마카베오기를 두고 천주교와 정교회는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개신교는 정경에 넣지 않고 외경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공동번역에는 마카베오기가 실려 있지만 개역개정에는 실려 있지 않다. 많은 학자와 주석가는 다니엘 11장과 '멸망의 가증한 것'(다니엘 11:31, 마태복음 24:15)을 해석할 때 안티오코스 4세 시대를 배경으로 다룬다.

평가

하스몬 왕조는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는 저항에서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유대교 전통에서는 지금도 수전절로 그 승리를 기념한다. 반면 시간이 지나면서 왕조 스스로 헬레니즘 왕국처럼 바뀌었고, 다윗 가문이 아닌 집안이 왕위를 차지하고 사독 계열이 아닌 제사장 가문이 대제사장직까지 함께 맡았다. 이 점은 당시에도 비판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개신교 독자에게 이 시기는 복음서 시대의 정치·종교 상황을 이해하는 배경으로 주로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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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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