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사본
성경 · 개념·용어
사해 사본은 1947년부터 사해 북서쪽 쿰란 일대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유대 문서들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 사본이 들어 있어 성경 본문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성경과의 관계
사해 사본은 성경에 나오는 낱말이 아니다. 성경을 비롯한 고대 유대 문헌을 손으로 베껴 쓴 문서 묶음을 가리킨다. 사본(寫本)은 인쇄술이 생기기 전에 손으로 옮겨 적은 책을 뜻한다. 이 문서들에는 구약성경 사본이 많이 들어 있어서, 성경 본문이 어떻게 전해져 왔는지를 연구하는 데 핵심 자료가 된다.
발견과 내용
1947년 베두인 목동이 쿰란 근처 동굴에서 항아리에 든 두루마리를 처음 찾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1956년까지 쿰란 주변 11개 동굴에서 문서가 더 나왔다. 조각까지 합치면 900여 개 문서로 정리된다. 넓은 뜻으로는 마사다 등 사해 주변의 다른 유적에서 나온 문서까지 사해 사본에 포함하기도 한다.
문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 성경 사본: 전체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에스더를 제외한 구약 거의 모든 책의 사본이나 조각이 나왔다. 이사야 전체가 거의 온전히 남은 '이사야 대두루마리'가 대표적이다.
- 공동체 문서: 공동체 생활 규칙을 적은 '공동체 규율서', 마지막 때의 전쟁을 그린 '전쟁 두루마리'가 있다. '하박국 주석'처럼 성경 본문을 자기 시대의 일에 적용해 풀이한 글도 있다.
- 정경 밖 문헌: 에녹서, 희년서, 토빗기, 집회서 등의 사본이나 조각이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 완본은 기원후 10세기 무렵의 마소라 본문 사본이었다. 사해 사본은 이보다 약 천 년 앞선 사본을 제공한다. 이사야 대두루마리는 몇 가지 차이를 빼면 마소라 본문과 대체로 일치한다.
다른 읽기를 보여 주는 사본도 있다.
- 사무엘상 사본 가운데 하나는 골리앗의 키를 마소라 본문의 "여섯 규빗 한 뼘"이 아닌 "네 규빗 한 뼘"으로 적는다. 이 읽기는 칠십인역과 같다.
- 예레미야 사본 가운데 하나는 칠십인역에 가까운 짧은 판을 보여 준다.
신약성경과 관련해서는 신구약 중간기 유대교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로 쓰인다. 빛과 어둠의 대비, 메시아에 대한 기대 같은 주제가 함께 나타난다. 한 문서는 이사야 61장 1-3절을 바탕으로 메시아 시대에 병자가 낫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기록한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 7장 22절과 자주 비교된다.
해석과 논점
- 공동체의 정체: 많은 학자는 사본을 남긴 집단을 에세네파와 연결한다. 이 집단과 쿰란의 관계를 다르게 보는 학자들도 있다.
- 본문 전승: 보수적인 학자와 교회는 사해 사본을 구약 본문이 오랫동안 충실하게 전해졌다는 근거로 본다. 이는 성경 무오설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인용된다. 본문비평(여러 사본을 비교해 원래 본문을 찾는 연구) 학계에서는 당시 여러 본문 전통이 함께 있었고, 마소라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 주는 자료로 강조하기도 한다.
- 정경 문제: 정경 밖 책이 함께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 책들의 정경 여부가 정해지지는 않는다. 개신교는 토빗기·집회서를 정경으로 보지 않는다. 천주교와 정교회는 이 책들을 성경에 포함한다.
- 사본이 직접 말하지 않는 주장: 7번 동굴의 그리스어 조각 하나가 마가복음의 일부라는 주장이 있으나 학계의 소수 견해이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쿰란 공동체 출신이라는 주장도 사본이 직접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추측이다. 출간이 늦어지자 문서를 일부러 감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1990년대 초 전체 자료가 공개된 뒤 대부분 힘을 잃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의 설교와 성경공부에서는 성경이 오랜 세월 정확하게 전해졌다는 예로 사해 사본, 특히 이사야 대두루마리가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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