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티아스
인물 · 같은 말: 마따디아, 맛다디아
마타티아스(공동번역: 마따디아)는 기원전 2세기 모데인에 살던 유다인 제사장이다.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코스 4세의 종교 박해에 맞서 마카베오 항쟁을 일으켰고, 유다 마카베오의 아버지이다.
생애
마카베오기 상권 2장에 따르면, 마타티아스는 요야립(여호야립) 가문의 사제이다. 시메온의 손자이고 요하난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을 떠나 모데인에 자리를 잡았다. 모데인은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던 마을로, 그의 집안이 대대로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들은 다섯이었다. 가띠라 불린 요하난, 타씨라 불린 시몬, 마카베오라 불린 유다, 하우아란이라 불린 엘아자르, 아푸스라 불린 요나탄이다.
당시 유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 시리아 지역을 다스린 그리스계 왕조이다. 이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유다인에게 그리스식 종교와 관습을 강요하였다. 기원전 167년경 왕의 관리들이 모데인에 와서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요구하자 마타티아스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어 한 유다인이 제단에 제물을 바치려 하자 그를 죽이고, 왕의 관리도 죽인 뒤 제단을 헐었다. 그 뒤 아들들과 함께 산으로 피하여 저항 세력을 모았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그가 셀레우코스력 146년(기원전 166년경)에 죽어 모데인의 조상 묘에 묻혔다고 전한다.
사역과 업적
- 항쟁의 시작: 모데인 사건은 마카베오 항쟁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마카베오기는 그의 행동을 민수기 25장에서 비느하스가 율법을 위해 열심을 낸 일에 견준다.
- 안식일 전투 결정: 안식일에 공격을 받고도 맞서 싸우지 않은 무리가 몰살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마타티아스와 동료들은 안식일이라도 공격을 받으면 싸우기로 결정하였다.
- 유언: 죽기 전에 아브라함, 요셉, 다윗, 엘리야, 다니엘 같은 조상들의 신앙을 예로 들어 아들들을 격려하였다. 그리고 시몬을 조언자로, 유다 마카베오를 군대의 지휘자로 세웠다.
그가 죽은 뒤 유다 마카베오가 항쟁을 이끌어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였고, 이 일은 수전절(하누카)의 기원이 되었다. 그 뒤 아들 시몬이 하스몬 왕조를 세웠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마타티아스의 이야기는 마카베오기에만 나온다. 천주교와 정교회는 마카베오기를 정경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한국 개신교 대부분은 이를 외경(정경에 들지 않은 책)으로 보아 성경에 넣지 않는다. 그래서 개역개정에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외경을 함께 실은 공동번역은 '마따디아'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성경』은 '마타티아스'로 적는다. 누가복음 3장 족보에 나오는 '맛다디아'는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주로 신구약 중간기의 역사를 설명할 때 그를 다룬다. 신약 시대의 유다교 상황과 수전절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평가
- 천주교와 유다교 전통은 그를 이방 종교의 강요에 맞서 율법을 지킨 인물로 기린다.
- 개신교는 마카베오기를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성경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행적을 신앙의 규범이 아닌 역사 자료로 다룬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외경이 영감으로 된 책이 아니라고 밝힌다.
- 같은 민족 사람을 제단에서 죽인 그의 열심이 종교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 마카베오기 상권은 하스몬 왕조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관점에서 쓰였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서술이 미화되었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6곳
- 마카베오기 상권 2장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마카베오기 하권 - 주석 성경 입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마카베오상 2:1 (공동번역) - 대한성서공회
- Mattathias - Bible Odyssey
- MATTATHIAS MACCABEUS - JewishEncyclopedia.com
- 1 Maccabees 2 (NAB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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