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그마
성경 · 개념·용어
케리그마는 '선포' 또는 '선포된 내용'을 뜻하는 그리스어 낱말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성경 본문
케리그마(그리스어 κήρυγμα)는 신약성경에서 '선포' 또는 '선포된 말씀'을 뜻하는 명사다. 마태복음 12장 41절과 누가복음 11:32에서는 니느웨 사람들이 듣고 회개한 요나의 외침을 가리킨다. 개역개정은 이 말을 "요나의 전도"로 옮겼다.
바울서신에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사도들의 선포를 가리킨다. 이 낱말이 나오는 대표적인 곳은 다음과 같다.
개역개정은 문맥에 따라 이 낱말을 '전도', '전파', '선포' 등으로 번역했다. 마가복음 끝부분의 일부 사본에도 이 낱말이 나온다.
낱말의 배경
케리그마는 동사 '케뤼소'(κηρύσσω, 알리다·선포하다)에서 나온 말이다. 같은 계열의 명사 '케뤽스'(κῆρυξ)는 전령, 곧 왕이나 도시의 공식 소식을 공개적으로 외쳐 알리는 사람을 뜻했다. 그래서 이 말에는 자기 생각을 말하기보다 보낸 이의 소식을 그대로 전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명사보다 동사형이 신약에 훨씬 자주 나온다. 예수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친 장면(마태복음 4장 17절)에도 이 동사가 쓰였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사도행전 2장, 3장, 10장, 13장에 실린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에는 공통된 줄거리가 있다.
바울은 자신의 선포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로 요약했다(고린도전서 1장 22-25절). 또 고린도전서 15:3-5에서는 전해 받은 복음의 핵심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로 정리했다. 그래서 케리그마는 흔히 복음의 핵심 내용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해석과 논점
- 선포 행위인가, 선포 내용인가: 고린도전서 1:21 같은 구절에서 케리그마가 '전하는 행위'를 뜻하는지 '전해진 내용'을 뜻하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 케리그마와 디다케: 영국 신학자 C. H. 다드는 1936년 『사도적 설교와 그 발전』에서 불신자에게 하는 선포(케리그마)와 신자에게 하는 가르침(디다케)을 구분했다. 이 구분은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신약에서 둘이 그렇게 뚜렷이 나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 불트만의 이해: 루돌프 불트만은 신앙이 역사적 예수의 재구성이 아니라 케리그마와의 만남에 기초한다고 보았다. 그의 제자들을 포함한 여러 학자는 케리그마와 역사적 예수의 관계를 다시 따졌다.
-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 개혁교회 전통의 제2 스위스 신앙고백(1566)은 "하나님 말씀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적었다. 칼 바르트는 선포를 하나님 말씀의 한 형태로 보았다. 이처럼 선포를 신학적으로 무겁게 보는 흐름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케리그마는 신학교의 설교학과 목회학에서 자주 쓰는 용어다. 교회의 사역을 케리그마(선포), 디다케(가르침), 코이노니아(교제), 디아코니아(봉사)로 나누어 설명하는 틀이 교회 교육과 목회 계획에서 널리 쓰인다. 여기에 레이투르기아(예배)를 더해 다섯으로 나누기도 한다. 다만 이 분류는 성경이 직접 제시한 목록이 아니라 후대 신학이 정리한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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