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운동
역사
수도원 운동은 3~4세기 이집트·시리아 사막에서 시작해, 세상과 거리를 두고 기도·노동·금욕을 하며 사는 수도 생활이 공동체와 제도로 자리 잡아 간 흐름이다. 중세 교회의 중심을 이루었고, 종교개혁 이후 교파마다 다르게 평가받는다.
배경
수도원 운동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기도·노동·금욕에 힘쓰며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금욕은 욕구를 스스로 절제하는 것을 말한다. 3세기 무렵 이집트와 시리아의 사막에 은수자(隱修者, 홀로 숨어 수행하는 사람)가 나타났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박해가 끝나자 교회는 제도화되었다. 이후 순교를 대신하는 헌신의 길로 수도 생활을 택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흔히 설명된다. 수도자들은 부자 청년에게 주신 말씀(마태복음 19:21) 등을 근거로 삼았다.
전개
- 이집트의 안토니우스(251년경~356년경)는 재산을 버리고 사막에서 수행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타나시우스가 360년 무렵 쓴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통해 그의 삶이 서방에까지 알려졌다.
- 파코미우스(292년경~348년경)는 4세기 초 이집트에서 여러 수도자가 규칙에 따라 함께 사는 공동 수도원을 세웠다.
- 4세기 후반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우스가 지은 수도 규칙은 동방 교회와 정교회 수도 생활의 바탕이 되었다.
- 서방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공동생활 규칙을 남겼다.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는 529년 무렵 몬테카시노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가 남긴 『베네딕투스 규칙』의 정신은 흔히 "기도하고 일하라"로 요약된다.
- 중세에는 910년 클뤼니 수도원과 1098년 시토회가 수도원 개혁을 이끌었다. 13세기에는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같은 탁발수도회(재산 없이 구걸과 설교로 사는 수도회)가 생겼다.
결과와 영향
수도원은 성경과 고전의 사본을 보존하고 학문·농업·의료·구제를 맡았다. 선교의 거점 구실도 했다. 종교개혁은 이 흐름을 크게 바꾸었다. 마르틴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도사였다. 그는 1521년 『수도 서원에 관하여』에서 수도 서원이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공로 신앙과 이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일상의 직업도 하나님을 섬기는 소명이라고 가르쳤다. 개신교 지역에서는 수도원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잉글랜드에서는 1536~1541년 헨리 8세가 수도원을 해산했다. 천주교는 수도회를 유지하면서 개혁했다.
근대 이후 개신교 안에서도 공동생활 전통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1930년대 신학생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신도의 공동생활』을 썼다.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도 이런 흐름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대천덕 신부가 1965년 강원도 태백에 세운 예수원이 잘 알려져 있다.
평가
천주교와 정교회는 청빈·정결·순명의 서원에 따른 수도 생활을 교회의 정당한 소명으로 보며, 이를 영성의 중심으로 여긴다. 루터교·장로교·개혁교회 등 종교개혁 전통은 칭의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만인제사장 원리에 따라 수도자를 일반 신자보다 높이는 이중 구분도 비판한다. 그래서 이들 교단은 대체로 수도 서원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공회는 19세기 이후 수도회를 다시 세웠고, 대한성공회에는 성가수녀회가 있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산속의 기도원 문화가 수도원 전통과 비교되기도 한다. 최근 일부 교회는 침묵·묵상 같은 수도원 영성을 신앙 훈련으로 재평가한다. 반면 관상기도 같은 수행을 들여오는 것에 대해서는 신비주의와 공로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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