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
인물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480년경~547년경)는 이탈리아의 수도자이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세우고 『베네딕투스 규칙서』를 지어 서방 교회 수도원 제도의 기틀을 놓았다.
생애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라틴어 Benedictus de Nursia)는 서방 교회 수도원 제도의 기틀을 놓은 수도자이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성 베네딕토'라고 부른다. 그의 생애는 주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6세기 말에 쓴 『대화』 제2권에 전한다. 이 기록에는 전설적 요소가 섞여 있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480년경 이탈리아 중부 누르시아에서 태어났고, 로마에서 공부했다. 도시의 방탕한 풍조에 실망해 수비아코의 동굴에서 홀로 수행했다고 전한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들자 수비아코 일대에 작은 수도원 여러 곳을 세웠다. 529년경에는 로마와 나폴리 사이의 몬테카시노로 옮겨 수도원을 세웠으며, 547년경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누이로 전해지는 스콜라스티카도 여성 수도 공동체를 이끌었다고 한다.
사역과 업적
가장 큰 업적은 『베네딕투스 규칙서』이다. 수도 공동체의 하루 생활과 조직을 73장에 걸쳐 정한 생활 규범으로, 공동 기도와 노동과 영적 독서를 균형 있게 배치했다. 규칙서는 정해진 시간마다 모여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의 일'이라 부르며 가장 앞에 두었다. 수도자는 세 가지를 서원한다. 수도원장에게 따르는 순명(順命), 한 공동체에 평생 머무는 정주(定住), 생활 전체를 끊임없이 고쳐 가는 회심이다. 지나친 고행보다 절제와 중용을 강조한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흔히 이 정신을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로 요약하지만, 이 말은 규칙서에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후대에 붙은 표어이다. 이 규칙서는 서유럽 수도원의 표준이 되었다. 수도원들은 중세 내내 필사·교육·농업을 통해 학문과 문화를 이어 갔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베네딕투스의 전통은 1909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이 서울에 수도원을 세우면서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이들은 함경도 덕원과 만주 연길로 옮겨 활동하다가 해방 뒤 북한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한국전쟁 뒤에는 경북 왜관에 수도원을 다시 세웠다. 이는 천주교의 역사이다.
개신교에는 직접 이어진 계승이 없다. 다만 성경을 천천히 읽고 묵상하며 기도로 이어 가는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가 규칙서를 통해 알려진 수도원 전통으로 소개되면서, 일부 교회의 영성 훈련에 쓰이기도 한다. 성공회 신부 대천덕(Archer Torrey)은 1965년 오늘날의 강원도 태백에 초교파 공동체 예수원을 세웠다. 예수원은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를 표어로 삼아 기도와 노동을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
천주교와 정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공경한다. 성공회와 일부 루터교회도 그의 기념일을 두고 있다.
종교개혁 시기의 개혁자들은 수도 서원 자체를 비판했다. 서원이 하나님 앞에서 공로처럼 여겨지고, 세상 속 일상의 소명을 낮춘다는 이유였다. 마르틴 루터는 1521년 무렵 『수도 서원에 관하여』를 써 평생 서원의 구속력을 문제 삼았다.
현대 개신교 안에서는 평가가 갈린다. 규칙서가 보여 주는 절제와 공동체성, 일상의 리듬을 신앙생활의 자원으로 다시 평가하는 흐름이 있다. 반면 이런 관상적 수련이 신비주의로 흐를 수 있다며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논쟁은 관상기도 문서에서 다룬다.
함께 보기 7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