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인물 · 같은 말: 어거스틴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북아프리카 히포 레기우스의 주교이자 서방 교회의 대표적 교부(초대교회의 신학적 스승)이다. 은혜와 죄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종교개혁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생애
354년 로마 제국의 북아프리카 속주 누미디아에 있는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어머니 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수사학(말하기와 글쓰기의 기술)을 익혀 카르타고와 로마, 밀라노에서 가르쳤다. 한동안은 선과 악이라는 두 원리를 내세우는 종교인 마니교에 빠져 있었다. 이 무렵 한 여성과 함께 살며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두었다.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로 돌아섰다. 『고백록』에 따르면 386년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로마서 13:13~14를 읽은 일이 회심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교수직을 그만두었고, 387년 부활절에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388년 아프리카로 돌아가 동료들과 함께 수도 공동체 생활을 했다. 391년 히포 레기우스에서 사제가 되었고, 395년 또는 396년에 그곳 주교가 되어 30년 넘게 교회를 이끌었다. 430년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하고 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저술: 자기 삶과 회심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형식으로 쓴 『고백록』, 410년 로마가 약탈당한 뒤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을 대비해 역사를 해석한 『신국론』, 삼위일체 교리를 다룬 『삼위일체론』이 대표작이다.
- 도나투스파 논쟁: 도나투스파는 박해 때 신앙을 저버린 성직자가 베푼 성례는 효력이 없다고 본 북아프리카의 분파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례의 효력이 집례자의 거룩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고 반박했다.
- 펠라기우스 논쟁: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자기 의지로 도덕적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펠라기우스주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맞서 원죄(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류가 물려받은 죄의 상태)를 주장하고, 구원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때문에 '은총의 박사'로 불린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개신교와 성공회에서는 영어식으로 '어거스틴'이라고도 부르고, 천주교에서는 '아우구스티노'라고 부른다. 마르틴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사였다. 루터와 장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론과 죄론에 기대어 종교개혁 신학을 세웠다. 이 때문에 장로교가 다수인 한국 개신교의 예정론과 은혜 교리도 흔히 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된다. 『고백록』은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으며, 교파와 상관없이 신앙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
천주교는 그를 성인이자 교회학자로 8월 28일에 기념하고, 정교회도 성인으로 공경한다. 개신교에서도 종교개혁 이전의 가장 중요한 교부로 존중받는다.
다만 그의 가르침을 어디까지 받아들이는지는 교단마다 다르다. 장로교 등 개혁주의 전통은 칼뱅을 거쳐 그의 예정론을 이어받았다고 본다.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전통도 은혜가 먼저라는 점은 받아들인다. 그러나 선행 은총 개념을 통해 은혜에 응답하는 인간의 책임을 더 강조한다. 동방 교회 쪽에서는 그의 원죄 이해가 서방 신학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이 밖에 도나투스파를 상대할 때 국가 권력의 강제를 받아들인 점도 비판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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