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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296년 또는 298년경~373년)는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이다. 아리우스주의에 맞서 성자의 온전한 신성을 변호했고, 오늘날과 같은 신약 27권 목록을 처음 제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알렉산드리아 주교 알렉산드로스 밑에서 배우고 부제(주교를 돕는 성직)가 되었다. 325년에는 알렉산드로스를 수행해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했다. 328년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되었고, 37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재임 기간에는 황제와 반대파의 압력으로 다섯 차례 추방되었다. 유배 기간을 모두 합하면 약 17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역과 업적

  • 아리우스 논쟁: 아리우스주의는 성자를 성부가 지은 피조물로 보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이에 맞서 성자가 성부와 "동일 본질"(호모우시오스, 같은 본질을 지녔다는 뜻)이라는 니케아 신경의 고백을 평생 변호했다. 이 입장은 뒤에 삼위일체 교리가 정립되는 기초가 되었다.
  • 저술: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된 것, 곧 성육신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아리우스파 반박』과, 수도 생활이 널리 퍼지는 데 영향을 준 『안토니우스의 생애』 등을 남겼다.
  • 정경 목록: 367년 교회에 보낸 부활절 서신(제39 축일 서신)에서 오늘날과 같은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나열했다. 이는 27권 목록을 그대로 제시한 가장 이른 문헌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서신에서 디다케와 『헤르마스의 목자』 등은 정경은 아니지만 신앙을 처음 배우는 이들이 읽을 만한 책으로 따로 구분했다.
  • 아타나시우스 신경에는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신경을 5~6세기 라틴어권에서 작성된 문서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개신교 교단들은 교파와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고백한다. 신학교의 교회사와 교리 과목은 이 신앙의 역사적 뿌리로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를 다룬다.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신약 27권도 그가 제시한 목록과 같다. 또 한국 교단들이 이단 규정을 논의할 때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이해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 것도 니케아 신앙의 전통과 이어져 있다.

평가

천주교, 정교회, 콥트 정교회는 그를 성인이자 교부로 공경한다. 개신교에서도 정통 기독론을 지킨 교부로 높이 평가한다. 많은 이들이 정치 권력에 굴하지 않고 신앙고백을 지켰다는 점을 기려 "아타나시우스 대 세상"(Athanasius contra mundum)이라는 표현을 쓴다.

비판도 있다. 반대파는 생전에 그를 폭력과 권한 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335년 티루스 교회회의는 그를 정죄했는데, 그를 지지하는 쪽은 이 판결이 반대파의 모함에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그가 반대파를 다룬 방식과 정치적 행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또 그 시대에 관한 자료 상당수가 그 자신의 논쟁적 저술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균형 있게 읽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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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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