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 설교
성경 · 개념·용어
요한복음 13~17장에서 예수가 잡히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남긴 긴 당부와 기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새 계명, 보혜사 성령의 약속, 포도나무 비유 등이 담겨 있다.
본문과 내용
고별 설교는 요한복음 13~17장에서 예수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한 긴 말씀을 부르는 통칭이다. 성경 본문에 붙은 이름은 아니다. 범위는 학자마다 다르게 잡는다. 가룟 유다가 나간 뒤인 13:31부터 16:33까지를 좁은 의미의 고별 설교로 보고, 17장의 기도는 따로 '대제사장적 기도'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요한복음 13:34)
- 아버지 집의 거할 곳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4:2-6)
- 보혜사 성령의 약속 (요한복음 14:16, 26, 15:26, 16:7)
-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와 "내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1-8)
- 세상의 미움에 대한 예고와 근심이 기쁨으로 바뀐다는 약속 (요한복음 15:18-16:22)
- 제자들과 후대 믿는 이들이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요한복음 17:20-23)
설교 중간에는 베드로, 도마, 빌립 등이 묻고 예수가 답하는 대화가 섞여 있다.
배경
떠나는 지도자가 남은 이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기는 '고별사' 형식은 성경에 여러 번 나온다. 야곱의 축복(창세기 49장), 모세가 남긴 신명기의 설교, 여호수아의 마지막 당부(여호수아 23~24장)가 그 예이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밀레도 고별사(사도행전 20:17-38)가 비슷한 형식이다.
'보혜사'로 옮긴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곁으로 불린 자'라는 뜻이다. 돕는 이, 변호하는 이, 위로하는 이라는 뜻을 함께 담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공관복음은 마지막 주간의 긴 가르침으로 종말을 다루는 감람산 강화(마가복음 13장 등)를 전한다. 요한복음에는 이 강화가 없고, 예수가 떠난 뒤 성령과 함께 살아갈 제자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 고별 설교가 실려 있다. 새 계명과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은 요한일서로 이어진다. 요한일서 2:1에서 '대언자'로 옮긴 낱말이 바로 파라클레토스이다.
해석과 논점
- 구성: 14:31에서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고 한 뒤에도 말씀이 17장까지 이어진다. 이를 두고 여러 자료가 합쳐졌다고 보는 학자와 한 흐름으로 읽는 학자가 갈린다.
- 성령의 나오심: 15:26의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은 필리오케 논쟁의 주요 본문이다. 성령이 아버지에게서만 나오는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지를 두고 정교회와 서방 교회(천주교와 대부분의 개신교)가 서로 다른 고백을 한다.
- 버려지는 가지: 15:6을 칼빈주의 전통은 처음부터 참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사람을 가리킨다고 읽는 경향이 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전통은 실제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경고로 읽는 경향이 있다.
- "이보다 큰 일":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는 14:12를 기적과 은사가 계속된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한다. 다른 쪽에서는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지는 범위가 커진다는 뜻으로 읽기도 한다.
- 하나 됨: 17:21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자주 인용된다. 복음주의 쪽에서는 진리 안에서의 영적 하나 됨을 강조해 읽는다.
- 덧붙여지는 이야기: 14:2의 "거할 곳"을 두고 성도마다 천국에 집이 지어지고 그 크기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본문은 거처의 모양이나 차등을 말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14:1-3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장례예배와 추도예배에서 자주 봉독된다. 고난주간 목요일(세족목요일)에는 13장의 세족식 장면과 함께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교회가 많다. 15장은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주제로 한 설교에서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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