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전쟁
성경 · 개념·용어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신다고 묘사한 전쟁을 묶어 부르는 학술 용어다. 성경에 그대로 나오는 낱말은 아니며, '여호와의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성경 본문
'거룩한 전쟁'은 성경에 고정된 낱말로 나오지 않는다. 학자들이 구약의 여러 전쟁 이야기를 묶어 부르면서 쓰기 시작한 말이다. 20세기 독일 구약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가 이 개념을 체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의 표현에 더 가깝게 '여호와의 전쟁'이라 부르는 학자도 있다. 민수기 21:14에는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책 이름이 나온다.
대표 본문은 다음과 같다.
- 홍해 도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출애굽기 14장 13-14절), "여호와는 용사시니"(출애굽기 15:3)
- 신명기 20장: 출전 전에 제사장이 백성을 격려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등의 전쟁 규례
- 여리고 함락(여호수아 6장)과 아간의 범죄(여호수아 7장)
- 기드온의 300명(사사기 7장)
-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사무엘상 17:47)
- 여호사밧이 찬양하는 사람들을 앞세워 출전한 일(역대하 20장)
배경
고대 근동의 여러 민족도 전쟁을 신들의 싸움으로 여겼다. 구약의 전쟁 이야기에서는 언약궤가 군대 앞에 서고, 승리가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다는 점이 강조된다. 적과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쳐 사람이 쓰지 못하게 하는 '헤렘'(히브리어로 진멸 또는 바침이라는 뜻)이 함께 나오기도 한다. 요엘 3:9의 "전쟁을 준비하고"는 원문에서 '전쟁을 거룩하게 하라'는 표현이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구약은 하나님을 무조건 이스라엘 편에 서는 분으로 그리지 않는다. 여호수아 5:13-15에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이스라엘 편이냐는 여호수아의 물음에 "아니라"고 답한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신다고도 말한다(예레미야 21:5). 예언서는 여호와의 날을 이스라엘에게도 심판의 날로 선포한다.
신약은 이 주제를 영적인 싸움으로 이어받는다. 에베소서 6장 10-18절은 혈과 육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 싸운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한다. 고린도후서 10장 3-5절은 신자의 무기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신자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고(로마서 12장 17-21절), 마지막 싸움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루시는 것으로 묘사된다(요한계시록 19:11-21).
해석과 논점
진멸 명령의 윤리 문제를 두고 해석이 나뉜다.
- 심판으로 보는 견해: 개혁주의를 비롯한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은 이를 가나안 족속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본다(창세기 15:16). 또 구속사의 특정 시기에 한정된 명령이므로 오늘날 되풀이할 수 없다고 본다.
- 과장 어법으로 보는 견해: 일부 학자는 고대 근동 전쟁 기록에 흔한 과장된 표현으로 읽는다. 여호수아서는 온 땅을 정복했다고 기록하지만, 사사기에는 여전히 가나안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 영적·풍유적 견해: 오리게네스 등 일부 교부는 본문을 영적 싸움을 가리키는 풍유로 읽었다.
- 평화교회의 견해: 재세례파와 퀘이커 같은 평화교회 전통은 예수의 비폭력 가르침(마태복음 5장 38-42절)을 앞세워 신자의 무력 사용을 거부한다. 이 입장은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서방 교회가 이어 온 정당전쟁론과 구별된다.
역사에서는 십자군처럼 이 개념을 끌어와 전쟁을 정당화한 사례가 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이어져 왔다. 성경 본문이 오늘날 특정 국가나 민족의 전쟁을 '거룩한 전쟁'으로 부를 근거를 준다고 보는 교단은 드물다.
한국 교회에서
설교와 기도회에서는 '영적 전쟁', '영적 전투'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며, 대개 에베소서 6장을 근거로 한다. 이를 지역을 지배하는 귀신을 결박하는 일 등으로 넓히는 신사도 운동 계열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교단에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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