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세례파
교파 · 같은 말: 메노나이트, 아나뱁티스트
재세례파는 16세기 종교개혁 때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개신교 흐름이다.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신앙을 고백한 사람에게만 세례를 베풀었다. 메노나이트와 후터파가 이 계통에 속한다.
정의와 뜻
재세례파(再洗禮派)는 '세례를 다시 베푸는 무리'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라 하고, 재침례파라고도 부른다. 이 이름은 이들을 반대한 종교개혁자들이 붙였다. 재세례파 자신들은 유아 때 받은 세례를 참된 세례로 보지 않았으므로, 자기들이 베푸는 세례를 '다시' 주는 세례로 여기지 않았다. 메노나이트는 네덜란드 지도자 메노 시몬스(Menno Simons)의 이름을 딴 갈래로, 재세례파 전통을 오늘날까지 잇고 있다.
재세례파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성경적·역사적 배경
재세례파는 성경 어디에도 유아세례를 명령한 곳이 없다고 주장했다. 믿음이 세례보다 앞선다는 근거로 흔히 마가복음 16:16을 들고, 비폭력의 근거로는 마태복음 5:39 같은 산상수훈 말씀을 든다.
이 운동의 출발점으로는 1525년 1월 21일 취리히에서 콘라트 그레벨, 펠릭스 만츠, 게오르크 블라우로크 등이 서로 세례를 베푼 일이 꼽힌다. 이들은 원래 울리히 츠빙글리가 이끈 취리히 개혁에 함께했으나, 유아세례 문제로 갈라섰다. 같은 해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옹호하는 글을 써서 이들을 반박했다. 취리히 당국은 재세례파 지도자들을 추방했고, 다시 돌아와 가르친 만츠는 물에 빠뜨려 처형했다. 재세례파는 천주교 지역과 개신교 지역 양쪽에서 이단이자 반역자로 몰려 많은 사람이 처형되었다.
이후 운동은 여러 갈래로 퍼졌다. 그레벨 계열의 스위스 형제단, 발타자르 후브마이어가 이끈 남부 독일 재세례파, 모라비아의 후터파, 네덜란드와 북부 독일의 메노나이트가 대표적이다. 독일 뮌스터에서 나타난 급진적 종말론 집단은 흔히 다른 갈래와 따로 구분한다.
평가와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 개혁교회·장로교: 츠빙글리 이래 개혁주의 전통은 언약신학에 따라 유아세례를 옹호하고 재세례파를 비판해 왔다. 한국 장로교 매체에서도 재세례파를 '극단적' 또는 '급진적' 종교개혁으로 소개하는 글을 찾아볼 수 있다.
- 재세례파 쪽: 국가교회 체제에서 벗어나, 거듭난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신약성경 공동체를 회복하려 한 개혁으로 스스로를 이해한다.
- 침례교와의 관계: 신자의 세례와 정교분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닮아 자주 함께 언급된다. 다만 두 전통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이어져 있는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한국 개신교 주요 교단 가운데 재세례파 계통의 교단은 없다. 한국에서 재세례파는 주로 교회사 교육과 기독교 언론의 종교개혁 연재 등을 통해 소개되어 왔으며, 세례 이해를 둘러싼 유아세례 논쟁에서 자주 거론된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7곳
- 급진파 종교개혁 – 재세례파 (이호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USA)
- 재세례파 - 위키백과
- 임경근 목사의 역사이야기 - 극단적 종교개혁, 재세례파! (고신뉴스 KNC)
- 역사속에서 배우는 종교개혁 ⑨ (황대우, 교회와이단)
- 재세례파 > 교회사
- Leo Jud - Wikipedia
- Bernhard Rothmann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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