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인물 · 성경 인물
여호사밧은 분열 왕국 시대에 남유다를 다스린 왕이다. 아사의 아들로, 율법 교육과 재판 제도를 정비한 일과 기도와 찬송으로 모압·암몬 연합군을 물리친 이야기(역대하 20장)로 알려져 있다.
성경의 기록
여호사밧은 왕국 분열 뒤 남쪽 유다를 다스린 왕이다. 이름은 흔히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에 관한 기록은 열왕기상 15:24와 22장, 열왕기하 3장, 역대하 17~20장에 있다. 아사의 아들로 35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25년 동안 다스렸다(열왕기상 22:42).
- 개혁과 교육: 방백과 레위인을 보내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 성읍들을 돌며 백성을 가르치게 했다(역대하 17:7-9). 또 재판관을 세우고 공정하게 재판하라고 당부했다(역대하 19:4-11).
- 아합과의 동맹: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혼인으로 동맹을 맺었다. 그 결과 아들 여호람이 아합의 딸 아달랴를 아내로 맞았다(역대하 18:1, 21:6).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 길르앗 라못 전투에 나갔고, 아합은 선지자 미가야가 예언한 대로 전사했다(열왕기상 22장). 전투에서 돌아온 여호사밧을 선견자 하나니의 아들 예후가 꾸짖었다(역대하 19:2).
- 모압·암몬 연합군과의 전쟁: 적군이 쳐들어오자 그는 금식을 선포하고 백성 앞에서 기도했다. 레위인 야하시엘이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예언했다. 노래하는 자들이 군대 앞에서 찬송하자 적들이 서로를 쳐 죽였고, 백성은 그곳을 브라가(복) 골짜기라 불렀다(역대하 20장).
- 그 밖의 일: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함께 배를 지었으나 배가 부서졌다(역대하 20:35-37).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함께 모압을 치러 갔다가 물이 떨어졌을 때는 엘리사를 찾았다. 엘리사는 여호사밧을 보아서 응답한다고 말했다(열왕기하 3장).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열왕기와 역대기는 모두 그가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고 평가한다(열왕기상 22:43, 역대하 20:32). 동시에 악한 왕과 손잡은 일은 거듭 책망을 받는다. 그가 맺은 아달랴와의 혼인은 뒷날 유다 왕실이 큰 위기를 겪는 원인이 된다(역대하 22:10).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8의 예수 족보에 이름만 나온다.
해석과 논점
- 산당 문제: 산당은 산이나 언덕에 세운 제사 장소를 말한다. 역대하 17:6은 여호사밧이 산당을 없앴다고 적지만, 열왕기상 22:43과 역대하 20:33은 산당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적는다. 이를 두고 우상 산당과 여호와께 제사하던 산당을 구분해 읽는 조화적 해석이 있다. 두 기록의 자료와 관점이 달랐던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 여호사밧 골짜기: 요엘 3:2, 12의 "여호사밧 골짜기"는 하나님이 열국을 심판하시는 곳이다. 이곳을 왕의 전쟁터와 연결하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름의 뜻을 살린 상징적 지명으로 보는 견해도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 골짜기를 기드론 골짜기로 보는 것은 후대의 전승이다.
- 찬양과 승리: 역대하 20장을 찬양이 영적 전쟁의 방법이라는 뜻으로 적용하는 설교가 있다. 반면 본문의 중심은 찬양이라는 행위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른 데 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역대하 20장은 위기 앞에서 드리는 기도와 찬양을 주제로 한 설교의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노래하는 자들이 군대 앞에 선 장면은 찬양 사역의 의미를 설명할 때 인용되곤 한다. 아합과의 동맹은 신앙인의 잘못된 협력을 경계하는 예로 다뤄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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