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커
교파 · 같은 말: 친우회
퀘이커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조지 폭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개신교의 한 갈래이다. 정식 이름은 종교친우회(친우회)이며,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예배와 평화주의로 알려져 있다.
정의와 뜻
퀘이커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생겨난 개신교의 한 갈래이다. 정식 이름은 '종교친우회'(Religious Society of Friends)이고, 한국에서는 '친우회'나 '퀘이커교'라고도 부른다. '퀘이커'(Quaker)는 '떠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예배 중에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몸을 떨었다는 이야기를 두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놀리며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신자들은 '친우회'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서로를 '친구'(Friend)라고 부르는 것은 요한복음 15:14에서 따온 것이다.
퀘이커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체험적 신앙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흔히 '내면의 빛'이라고 부른다. 정해진 순서 없이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예배와 평화주의로 알려져 있다. 신학적 입장은 모임마다 차이가 크다. 오늘날에는 복음주의 성향의 친우회부터 진보적인 모임까지 여러 연합체가 함께 있다.
성경적·역사적 배경
대표적인 초기 지도자인 조지 폭스(1624~1691)는 영국 레스터셔의 페니 드레이턴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영국 내전기에 여러 해 동안 떠돌며 신앙의 답을 찾았다. 그리고 교회 제도나 성직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다고 가르쳤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처음에 '빛의 자녀', '진리의 친구'로 불렸고, 뒤에 '친우'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퀘이커들은 대체로 1652년을 친우회의 출발로 본다. 이해에 폭스는 랭커셔의 펜들 힐에서 '모여들 큰 백성'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같은 해 펠 판사 집안이 이 운동을 받아들이면서 그 집인 스와스모어 홀이 초기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청교도 혁명기에 생겨난 퀘이커는 영국 국교회(성공회) 예배 출석, 맹세, 십일조 납부를 거부하였다. 이 때문에 퀘이커를 단속하는 법이 통과된 1662년부터 관용령이 나온 1689년까지 1만 5천 명이 넘는 신자가 처벌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은 매달 모이는 '월회'와 1년에 한 번 모이는 '연회'를 단위로 갖추어졌다. 하워드 브린턴은 『퀘이커 300년』에서 한 연회가 1696년부터 흑인 노예를 사들이는 일을 경고해 왔다고 적었다.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한국의 퀘이커는 규모가 매우 작다. 대표적인 모임은 '종교친우회 서울모임'(퀘이커 서울모임)이며, 한 언론의 탐방 기사는 모임 규모를 20여 명으로 소개하였다. 서울모임은 사회 현안에 대해 모임 이름으로 성명을 내기도 하였다.
한국 퀘이커를 말할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사상가 함석헌(1901~1989)이다. 그는 오산학교에서 공부하던 1921년에 토머스 칼라일의 『의상철학』을 읽고 퀘이커를 처음 알게 되었고, 이어 폭스의 『일지』를 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16 군사정변 뒤에는 미국을 방문해 퀘이커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브린턴의 『퀘이커 300년』을 우리말로 옮기는 등 퀘이커를 국내에 소개하는 데 힘썼다. 다만 그는 말년에 노자·장자를 강의하는 등 특정 교파에 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를 퀘이커로만 규정하는 데에는 다른 의견도 있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6곳
- 퀘이커,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평화주의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퀘이커교 - 한국가톨릭대사전
- George Fox - Quakers in Ireland
- Quakers - Wikipedia
- 최초 퀘이커교도 조지 폭스의 흔적을 찾아서 - 오마이뉴스
- 함석헌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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