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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테마

성경 · 개념·용어

아나테마는 '하나님께 바쳐진 것' 또는 '저주받아 끊어진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신약에서는 바울서신에 주로 나오며, 개역개정은 대개 "저주를 받을지어다"로 옮겼다.

성경 본문

아나테마는 신약성경 그리스어 원문에서 주로 바울의 편지에 나온다. 개역개정은 이 낱말을 대개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주를 받아"로 옮겼다.

  • 로마서 9:3: 바울은 동족 이스라엘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한다고 말한다.
  • 고린도전서 12:3: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예수를 저주받은 자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고린도전서 16:22: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말 바로 뒤에 마라나타가 이어진다.
  • 갈라디아서 1:8-9: 바울이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는 사람이든 천사든 저주를 받으라고 두 번 말한다.

같은 뿌리의 동사가 사도행전 23장에도 쓰였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유대인들의 말이 그것이다.

낱말의 배경

그리스어 아나테마의 본래 뜻은 '위에 올려 둔 것'이다. 신에게 바쳐 신전에 걸어 둔 봉헌물을 가리켰다. 누가복음 21:5에서 성전을 꾸민 "헌물"은 철자가 비슷한 아나테마(ἀνάθημα)로, 이 본래 뜻을 지닌다.

구약의 칠십인역(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은 히브리어 '헤렘'을 이 낱말로 옮겼다. 헤렘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 사람이 다시 쓸 수 없는 것을 가리키며, 진멸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레위기 27:28-29). 다음 사건들이 이 개념과 이어진다.

신약에서의 의미

신약에서 아나테마는 거룩한 용도로 바친다는 뜻보다 하나님의 심판에 넘겨져 그리스도와 공동체에서 끊어진다는 뜻으로 쓰인다. 바울은 이 말을 두 가지 방향으로 썼다. 갈라디아서에서는 복음의 내용을 지키는 엄한 경고로, 로마서에서는 동족을 향한 자기희생적 사랑의 표현으로 썼다. 요한계시록 22:3의 "다시 저주가 없으며"에는 이와 가까운 낱말(카타테마)이 쓰였고, 저주가 끝난 새 창조를 그린다.

해석과 논점

  • 로마서 9:3: 이 구절은 금송아지 사건 뒤 모세가 백성을 위해 자기 이름을 주의 책에서 지워 달라고 한 기도(출애굽기 32:32)와 자주 비교된다. 실제 소원으로 볼지, 이룰 수 없음을 알면서 한 강조 표현으로 볼지는 해석이 갈린다.
  • 고린도전서 12:3: 누가 예수를 저주받은 자라고 말했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는다. 회당의 반대자로 보는 설, 황홀경 속의 발언으로 보는 설, 가정해서 든 예로 보는 설 등이 있다.
  • "아나테마 마라나타": 킹제임스 성경은 고린도전서 16:22을 "Anathema Maranatha"로 음역했다. 그 때문에 두 낱말이 하나로 묶인 더 무거운 저주 문구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번역과 주석은 저주 선언과 "주여 오시옵소서"(또는 "주께서 오신다")라는 기도를 따로 읽는다.
  • 교회사에서의 쓰임: "아나테마가 될지어다"는 공의회가 정죄한 가르침에 붙이는 문구가 되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정한 신경 끝에는 아리우스주의의 주장을 정죄하는 문구가 붙어 있고,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의 법령도 이 형식을 썼다. 천주교와 정교회는 이를 교회의 공적 판결 형식으로 써 왔다. 개신교 교단들은 대개 이 문구를 쓰지 않는다.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것으로 읽고, 실제 처리는 권징과 이단 규정 절차를 따른다. 바울이 말한 아나테마를 교회의 출교(교인 자격을 박탈해 내보내는 처분)와 같은 것으로 볼지는 전통마다 이해가 다르다.

한국 교회에서

'아나테마'라는 원어는 설교보다 주석이나 신학 강의에서 주로 쓰인다. 갈라디아서 1:8-9은 이단 문제를 다룰 때 "다른 복음"을 경계하는 본문으로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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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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