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장 3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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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성령의 은사를 설명하며 먼저 세운 기준이다.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은 예수를 저주하지 않으며, 성령이 아니면 "예수는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앙고백과 성령의 관계, 영 분별의 기준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물어 온 "신령한 것", 곧 성령의 은사(恩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를 다룬다. 2절에서 바울은 교인들이 이방인이었을 때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다녔다고 일깨운다. 3절에서는 어떤 말이 하나님의 영에서 나온 것인지 가리는 기준을 먼저 세우고, 4절부터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같은 성령에게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이 단락의 배경으로는 방언 같은 황홀한 체험을 중시하던 고린도 교회의 형편이 흔히 거론된다.
"저주할 자"로 옮긴 헬라어는 '아나테마'(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인 것)이다. "예수를 주시라"는 '퀴리오스 예수스'(예수는 주)라는 짧은 고백이다.
해석
- 신앙고백의 근거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예수는 주"를 초대교회의 가장 이른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로 본다. 그리고 이 구절을, 이 고백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일이라는 뜻으로 읽는다. 개혁주의 전통은 믿음 자체가 성령의 선물이라는 가르침의 근거로 이 구절을 자주 든다.
- 영 분별의 기준으로 보는 읽기: 은사를 다루는 단락의 첫머리라는 점에 주목하는 읽기다. 황홀경 속에서 나온 말이라도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말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으로 본다. 요한일서 4장 2-3절과 나란히 읽히곤 한다.
- "예수를 저주"의 배경에 관한 견해: 세 가지 견해가 제기된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실제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견해, 회당이나 박해 상황에서 예수를 저주하라는 압력이 있었다는 견해, 바울이 대비를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는 견해다. 어느 쪽도 정설로 굳어지지는 않았다.
논쟁과 쟁점
- 말과 고백: 이 구절이 "주"라는 말을 입으로 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데 여러 교단이 대체로 동의한다. "주여 주여" 하는 이가 모두 인정받지는 못한다는 마태복음 7장 22-27절과 함께 읽으며, 믿음과 삶이 담긴 고백으로 이해한다.
-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 장로교 등 개혁주의 쪽은 이 구절과 13절을 근거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신자에게 이미 성령이 계시다고 강조한다. 오순절주의 교단도 고백하는 신자 안에 성령이 계심을 인정한다. 다만 이와 구별되는 성령세례 체험을 따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 교회에서
구원의 확신을 다루는 성경공부나 설교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표시라는 설명에 이 구절이 인용되는 일이 있다. 성령의 은사를 다루는 설교에서 도입부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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