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사람
성경 · 개념·용어
불법의 사람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바울이 주의 날 이전에 나타난다고 말한 인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높이는 자를 가리킨다. 흔히 적그리스도와 연결해 해석한다.
성경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온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말이 퍼져 있었다. 바울은 이 말에 흔들리지 말라고 하면서,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날이 오지 않는다고 적었다(데살로니가후서 2장 3-4절).
본문은 이 인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하나님이라 불리는 모든 것에 대적하여 자기를 높인다.
-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내세운다.
- 지금은 "막는 것" 또는 "막는 자"가 있어 그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6-7절).
- "불법의 비밀"은 이미 활동하고 있다(7절).
- 사탄의 활동을 따라 거짓 표적과 기적을 행한다(9절).
-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고 폐하신다(8절).
배경과 낱말
'불법'으로 옮긴 그리스어 '아노미아'는 법이 없는 상태, 곧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상태를 뜻한다. 일부 사본에는 '죄(하마르티아)의 사람'으로 되어 있으며, 킹제임스 성경의 "man of sin"은 이 사본을 따른 번역이다. '멸망의 아들'은 요한복음 17:12에서 가룟 유다를 가리킬 때에도 쓰인 표현이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성전에서 자기를 높이는 모습은 다니엘서의 묘사와 닮았다. 다니엘서에는 자기를 모든 신보다 크다 하는 왕(다니엘 11:36)과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다니엘 9:27)이 나온다. 많은 학자는 이 다니엘서 본문이 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쿠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고 본다. 예수께서도 종말에 관한 가르침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언급하셨다(마태복음 24장 15절).
'적그리스도'라는 낱말은 데살로니가후서에 나오지 않고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만 나온다. 이 두 본문을 하나로 묶어 읽는 것은 해석자들의 판단이다.
해석과 논점
정체
이레네우스 같은 초기 교부들은 불법의 사람을 종말에 올 적그리스도 개인으로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막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기에는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 등이 이 인물을 로마 교황 제도와 연결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원문(25장 6항)도 교황을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라 불렀다. 이후 일부 장로교회의 개정판에서는 이 표현이 삭제되었다. 천주교는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대의 해석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막는 것
'막는 것'에 대해서도 견해가 갈린다. 테르툴리아누스 이후 오래 이어진 견해는 이를 로마 제국 또는 국가 질서로 본다. 그 밖에 복음 전파로 보는 견해와 성령이나 교회로 보는 견해가 있다. 성령이나 교회로 보는 견해는 세대주의의 환난 전 휴거설과 함께 퍼졌다. 반면 언약신학을 따르는 해석자들은 대체로 이 연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
다음 내용은 본문에 직접 나오지 않으며, 다른 본문을 엮거나 추론해서 나온 해석이다.
- 불법의 사람이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의 짐승과 같은 존재라는 것
- 666이나 특정 기술과의 연결
- '하나님의 성전'이 장차 재건될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것
한국 교회에서
이 본문은 재림과 종말론을 다루는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주로 인용된다. 바울의 본래 목적이 종말에 대한 불안과 미혹을 진정시키는 데 있었다는 점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경계하는 근거로도 쓰인다.
신천지는 이 장의 배교와 불법의 사람을 근거로 '배도·멸망·구원'의 순서를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교단은 이를 본문을 자의적으로 비유 풀이한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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