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툴리아누스
인물
테르툴리아누스는 2~3세기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활동한 기독교 저술가이자 변증가이다. 라틴어로 신학 용어를 다듬어 '라틴 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생애
라틴어 이름은 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이다. 2세기 중엽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오늘날 튀니지 일대)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몰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며, 대개 160년 무렵에 태어나 220년 이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본다. 성인이 된 뒤 기독교로 개종했고, 수사학과 법률에 밝았다고 전한다. 4세기의 히에로니무스는 그가 사제였다고 기록했으나, 학계에는 이를 의심하는 견해도 있다. 3세기 초 무렵에는 엄격한 금욕과 새로운 예언을 강조한 몬타누스주의에 기울었다.
사역과 업적
- 라틴어 신학: 라틴어로 신학 저술을 남긴 초기 인물이다. 《프락세아스 반박》에서 '삼위일체'(trinitas)라는 낱말과 '한 실체(본질), 세 위격(인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글은 성부와 성자를 같은 하나님이 모습만 바꾼 것으로 보는 양태론을 반박한 것이다. 이 표현은 뒤에 서방 교회가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바탕이 되었다.
- 변증: 《변증론》(197년경)에서 로마 당국의 그리스도인 박해가 부당하다고 논증했다. 변증은 신앙을 외부의 비판에 맞서 이성적으로 변호하는 일을 뜻한다. 이 책의 "그리스도인의 피는 씨앗이다"라는 구절은 흔히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로 바뀌어 인용된다.
- 이단 반박: 《마르키온 반박》에서 마르키온주의를, 다른 저술에서 영지주의 계열의 가르침을 비판했다. 《이단자들에 대한 항고》에는 "아테네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그리스 철학과 신앙의 관계를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 성례: 《세례론》은 세례만을 따로 다룬 저술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어린아이의 세례를 서두르지 말고 늦추는 편이 낫다고 권했다. 같은 책에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심 이야기에 나오는 제자들의 배를 교회의 상징으로 풀이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말을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한 주기철, 손양원 등을 기릴 때 자주 인용한다.
그의 《세례론》은 유아세례 논쟁에서 양쪽 모두의 근거로 쓰인다. 침례교는 이른 시기부터 유아세례에 문제를 제기한 사례로 보고, 장로교·감리교 등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교단은 그 무렵 이미 유아세례가 행해졌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본다.
신학대학원의 교부학·교회사 과목에서는 삼위일체 용어의 형성을 다룰 때 그를 중요하게 소개한다.
평가
서방 신학의 언어를 세운 인물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히에로니무스는 3세기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가 그의 글을 날마다 읽으며 "스승"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반면 말년에 몬타누스주의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천주교는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지 않는다. 철학에 대한 날 선 태도는 신앙과 이성을 지나치게 대립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복음의 고유성을 지키려 한 태도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흔히 그의 말로 알려진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그의 글에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육신》에 있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실하다"는 구절이 변형되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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