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 50-51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누가복음 24:50-51
50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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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예수가 베다니 근처에서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다가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간 장면을 전하는 누가복음의 마지막 대목이다. 승천 기사이자 예배의 축도와 관련해 자주 인용된다.
문맥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이다. 24장에서 부활한 예수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난다. 그는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기록된 일이 자기에게서 이루어졌다고 풀어 준다. 이어 회개와 죄 사함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을 말하고, "위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성에 머물라고 당부한다(24:44-49). 그 뒤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 동쪽 기슭의 마을 베다니 앞까지 나가 손을 들어 축복한다. 축복하는 중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간다. 52-53절에서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한다. 같은 저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 사도행전은 1장에서 이 승천을 다시 자세히 서술한다.
해석
- 승천 기사로서의 읽기: 대부분의 교단은 이 장면을 실제로 일어난 승천으로 읽는다.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하늘에 오르사"의 근거 본문 가운데 하나로 본다.
- 제사장적 축복으로서의 읽기: 일부 주석가는 손을 들어 백성을 축복하는 모습이 레위기 9장 22-23절의 아론을 떠올리게 한다고 본다. 누가복음은 성전에서 말을 잃어 백성을 축복하지 못한 제사장 사가랴(누가복음 1:22, 사가랴와 엘리사벳 참고)로 시작한다. 그리고 축복하는 예수로 끝난다. 이 구성을 의도된 대응으로 읽는 해석이 있다.
- 떠남과 축복의 연속으로서의 읽기: 예수가 "축복하실 때에" 떠났다는 표현에 주목하는 해석이다. 승천 이후의 교회가 그 축복 아래 있다는 뜻으로 읽으며, 설교에서 자주 강조된다.
논쟁과 쟁점
- 사본 문제: "하늘로 올리우시니"는 시내 사본의 원래 본문과 베자 사본 등 일부 고대 사본에 없다. 52절의 "그에게 경배하고"도 같은 사본들에서 빠져 있다. 개역한글이 이 부분을 괄호로 묶은 것은 이 사본 차이 때문이다. 19세기 웨스트콧과 호트는 이 구절을 후대의 첨가로 보았다. 그러나 파피루스 75 같은 이른 사본에 이 구절이 들어 있어, 오늘날 널리 쓰이는 비평 본문(네슬레-알란트)은 이를 본문에 넣는다.
- 사도행전 1장과의 관계: 누가복음만 읽으면 승천이 부활 당일에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사도행전은 승천을 부활 후 40일, 감람산에서 일어난 일로 적는다. 베다니가 감람산에 있으므로 장소의 차이는 크지 않다. 시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두 견해가 있다. 많은 복음주의 주석가는 복음서가 요약하고 사도행전이 자세히 적은 것으로 본다. 다른 학자들은 저자가 두 책의 목적에 맞게 다르게 배치한 것으로 본다.
- 승천한 몸과 성찬: 승천 이후 그리스도의 몸이 어디에 있는지를 두고 교파의 이해가 갈린다. 개혁교회 전통은 그리스도의 인성(사람으로서의 본성)이 하늘에 있다고 보고, 성찬에서는 성령을 통한 임재를 말한다. 루터교 전통은 '하나님 우편'을 특정한 장소로 보지 않으며, 인성도 성찬에 실제로 임재한다고 본다. 자세한 내용은 성찬 논쟁에서 다룬다.
한국 교회에서
- 예배 끝에 목사가 손을 들고 축도하는 모습의 성경적 근거로 민수기 6장 22-27절, 고린도후서 13장 13절과 함께 언급된다. 한국의 많은 교단에서는 축도를 안수받은 목사가 맡는 것이 관행이다.
- 교회력의 승천일은 부활절 후 40일째 되는 목요일이다. 개정공동성서정과는 승천일 복음서 본문으로 누가복음 24:44-53을 배정한다. 대한성공회처럼 교회력을 꼼꼼히 따르는 교회는 승천일 예배를 드린다. 다른 교회들은 가까운 주일에 승천을 기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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