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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장 14-1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히브리서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14-16은 승천하신 예수를 우리의 연약함을 아는 '큰 대제사장'으로 소개하고, 그래서 신자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참 인성과 죄 없음, 기도할 때의 확신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히브리서는 저자가 밝혀지지 않은 서신이다. 전통적으로는 바울의 글로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바울이 쓰지 않았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박해와 낙심 속에서 옛 유대교 제사 체계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글로 알려져 있다.

이 구절은 두 단락을 잇는 자리에 있다. 앞 단락(3:7~4:13)은 '안식'을 다루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경고(4:12-13)로 끝난다. 바로 이어 이 구절이 위로를 전하고, 뒤따르는 긴 단락(4:14~10:18)에서 예수의 대제사장직을 본격적으로 펼친다.

  • 승천하신 자: 원문은 직역하면 '하늘들을 통과하여 가신'이다. 구약의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 체휼: 개역한글의 '체휼(體恤)'은 남의 처지를 몸소 겪어 헤아린다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이를 '동정하다'로 옮겼다.

10:19-23에도 '담대함'과 '굳게 잡으라'는 표현이 다시 나온다. 그래서 두 본문이 대제사장 단락의 앞뒤를 감싸는 짝으로 읽히기도 한다.

해석

  • 기독론의 읽기: 15절은 예수가 참 사람으로서 실제로 시험을 겪었지만 죄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칼케돈 공의회가 정리한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라는 고백의 성경적 근거로 자주 쓰인다(기독론 참고).
  • 종교개혁 전통의 읽기: 루터교와 개혁교회를 비롯한 개신교는 이 구절을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이)라는 근거로 읽는다. 또 신자가 다른 인간 중재자 없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만인제사장 교리와 연결한다. 천주교도 그리스도의 유일한 대제사장직을 인정한다. 다만 직무 사제직은 그 대제사장직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개신교와 다르다.
  • 기도와 영성의 읽기: '은혜의 보좌'는 성막 지성소의 속죄소(언약궤 덮개)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정죄가 아니라 긍휼을 받는 자리로 풀이된다. 오순절·은사주의 전통을 포함한 여러 교회가 이 구절을 담대하고 확신 있는 기도의 근거로 강조한다.

논쟁과 쟁점

  • 예수가 죄를 지을 수 있었는가: 전통적으로 많은 신학자는 그리스도가 시험을 받았어도 죄를 지을 수 없었다고 본다(무죄 불가능설). 반면 시험이 참된 것이려면 죄의 가능성이 있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두 입장 모두 '죄는 없으시니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 '굳게 잡으라'와 배교 경고: 히브리서에는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배교)에 대한 경고가 여러 번 나온다. 칼빈주의 전통은 이를 성도의 견인(참된 신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는 교리)을 이루는 수단으로 읽는다.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신학 전통은 실제로 믿음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읽는 경향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는 표현은 기도에 관한 설교에서 자주 쓰인다. 예배의 대표기도에서도 관용적인 기도 문구로 흔히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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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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