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개혁
성경 · 사건 · 같은 말: 요시야의 종교개혁
요시야의 개혁은 유다 왕 요시야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계기로 언약을 새롭게 하고 우상 숭배를 없앤 종교 개혁이다. 열왕기하 22–23장과 역대하 34–35장에 나온다.
성경 본문과 내용
요시야의 개혁은 열왕기하 22–23장과 역대하 34–35장에 기록되어 있다.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1년 동안 다스렸다(열왕기하 22:1). 개혁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율법책 발견: 즉위 18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던 중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찾아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다. 사반이 왕 앞에서 이 책을 읽자 왕은 옷을 찢었다(열왕기하 22:8-11). 왕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사람을 보내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 언약 갱신: 왕은 백성을 성전에 모아 언약책을 읽어 들려 주고, 여호와를 따르겠다는 언약을 세웠다(열왕기하 23:1-3).
- 우상 제거: 왕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데 쓰던 기구들을 불사르고 산당(높은 곳에 세운 제단)을 더럽혀 쓰지 못하게 했다.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도 더럽혀, 다시는 자녀를 몰렉에게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했다(열왕기하 23:10). 벧엘의 제단도 헐었는데, 본문은 이 일을 열왕기상 13:2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한다(열왕기하 23:15-16).
- 유월절: 왕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했다. 본문은 사사 시대 이후로 이런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었다고 적는다(열왕기하 23:21-23).
배경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낫세가 오래 다스리는 동안 우상 숭배가 성전 안까지 들어왔다(열왕기하 21장). 학자들은 이 무렵 앗수르의 세력이 약해진 것이 개혁의 정치적 여건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요시야의 통치 연대는 대략 기원전 640–609년경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애굽 왕 바로 느고를 막으러 나섰다가 죽었다(열왕기하 23:29; 역대하 35:20-24).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열왕기하는 요시야를 두고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평가한다(열왕기하 23:25). 그러나 곧이어 므낫세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지 않으셨다고 적는다(열왕기하 23:26-27). 결국 유다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에 부름을 받았고(예레미야 1:2), 스바냐도 요시야 시대에 예언했다(스바냐 1:1). 신약에서 요시야는 마태복음 1:10-11의 예수 그리스도 족보에 이름이 나온다.
해석과 논점
- 율법책의 정체: 본문은 이 책을 "율법책"이라고만 부른다. 19세기 이후 많은 비평학자는 이 책을 신명기의 핵심 부분으로 본다. 예배를 한곳으로 모으는 조치나 유월절 규정 같은 개혁 내용이 신명기 12장, 16장과 맞는다는 것이 근거이며, 일부 학자는 이 책이 이 무렵에 쓰였다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모세 때부터 전해진 율법(모세오경 전체 또는 신명기)이 므낫세 시대에 잊혔다가 다시 발견된 것으로 본다.
- 열왕기와 역대기의 차이: 열왕기하는 율법책을 발견한 즉위 18년 이후에 개혁이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처럼 서술한다. 역대하는 요시야가 8년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고 12년부터 우상을 정리했다고 적는다(역대하 34:3).
- 개혁의 깊이: 예레미야 3:6-10은 요시야 때를 배경으로 유다가 "진심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을 근거로 백성의 변화가 겉에 그쳤다고 읽는 해석이 있다.
- 훌다: 여성 안수 논쟁에서 여선지자 훌다는 여성 사역을 지지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반대하는 쪽은 예언 활동과 교회 직분은 서로 다르다고 본다.
한국 교회에서
요시야의 개혁은 말씀의 회복과 교회 갱신을 강조하는 설교 본문으로 흔히 쓰이며, 종교개혁주일 설교에서도 자주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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