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냐
인물 · 성경 인물
여고냐는 유다 왕국 말기의 왕으로, 여호야긴·고니야라고도 불린다. 석 달 동안 다스린 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37년 만에 옥에서 풀려났다. 마태복음의 예수 족보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성경의 기록
여고냐는 유다 왕국 말기의 왕이다. 개역개정은 같은 사람을 세 이름으로 적는다.
열왕기하 24:8-17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18세에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역대하 36:9는 즉위 나이를 여덟 살로, 다스린 기간을 석 달 열흘로 적는다. 성경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그는 어머니 느후스다, 신하들과 함께 항복했다. 그 뒤 성전과 왕궁의 보물, 그리고 고관·용사·장인 등 많은 사람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 사건은 흔히 바벨론 포로의 두 번째 단계로 불린다. 에스겔도 이때 함께 끌려간 것으로 이해된다(에스겔 1:2). 느부갓네살은 여고냐의 숙부 맛다니야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어 그 자리에 왕으로 세웠다.
포로가 된 지 37년째 되던 해에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이 그를 옥에서 풀어 주었다. 에윌므로닥은 그를 다른 왕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히고, 평생 왕의 상에서 먹게 했다(열왕기하 25:27-30, 예레미야 52:31-34). 열왕기는 이 장면으로 끝난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예레미야는 고니야가 하나님의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해도 빼어 버리겠다고 선포했다. 또 그의 자손 가운데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예레미야 22:24-30).
한편 역대상 3:17-18은 스알디엘을 비롯한 그의 아들들을 기록한다. 그의 손자뻘인 스룹바벨은 포로에서 돌아온 뒤 유다 총독이 되었다. 학개 2:23에서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인장으로 삼겠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22장의 인장 반지 비유를 뒤집는 표현으로 흔히 읽힌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11-12가 여고냐를 예수의 족보에 넣는다. 여기서 그는 포로기를 사이에 두고 다윗 왕가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나온다. 에스더 2:6은 모르드개의 집안을 여고냐가 사로잡혀 간 사건과 연결한다.
해석과 논점
- "자식이 없겠고"의 뜻: 예레미야 22:30의 이 표현은 역대상에 나오는 아들 기록과 어긋나 보인다. 많은 주석가는 이를 왕위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뜻으로 읽는다.
- 예수의 족보: 예레미야의 선언이 마태복음의 족보와 어떻게 맞는지에 대해 여러 설명이 있다.
- 예수는 요셉의 법적 아들일 뿐 여고냐의 혈통이 아니므로 그 선언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 설명이 있다.
- 누가복음 3장의 족보를 마리아 쪽 계보로 보는 설명이 있다.
- 예레미야의 선언을 당대 유다 왕정에만 해당하는 말로 한정하는 설명이 있다.
- 이 문제는 교단보다 해석자에 따라 갈린다.
- 모르드개와의 관계: 에스더 2:6에서 함께 사로잡혀 간 사람이 모르드개 자신인지, 앞에 나온 증조부 기스인지는 원문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모르드개가 직접 끌려갔다면 아하수에로 시대에는 매우 나이가 많았어야 한다. 그래서 기스를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자도 많다.
- 본문 밖의 이야기: 유대교 전승에는 여고냐가 포로 생활 중에 회개하여 예레미야의 선언이 풀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성경 본문에 없다.
- 고고학 자료: 바벨론에서 나온 식량 배급 점토판에 '유다 왕'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이 자료를 열왕기하 25장의 기록과 연결해 본다.
한국 교회에서
여고냐가 독립된 설교 주제가 되는 일은 드물다. 성탄절 무렵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다루는 설교나 성경통독에서 이름이 언급되는 정도이다. 한 사람이 세 이름으로 나오기 때문에 성경공부에서는 이들이 같은 인물임을 짚어 주기도 한다. 열왕기가 그의 석방 기사로 끝나는 점을 들어, 심판 가운데서도 다윗 언약의 희망이 남아 있었다고 설명하는 설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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