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야긴
인물 · 성경 인물
여호야긴은 유다 왕국의 왕으로, 석 달가량 다스리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성경에는 여고냐·고니야라는 이름으로도 나온다.
성경의 기록
열왕기하 24장에 따르면 여호야긴은 아버지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18세에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어머니는 엘라단의 딸 느후스다이다. 성경은 그가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한다(열왕기하 24:9).
재위 중에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여호야긴은 어머니와 신하들과 함께 항복했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 관리와 용사, 기술자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열왕기하 24:10-16). 이 일을 흔히 1차 또는 2차 바벨론 포로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기원전 597년 무렵으로 본다. 이때 함께 끌려간 사람 가운데 에스겔이 있었다. 에스겔은 예언의 시점을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처럼 그의 포로 생활을 기준으로 적는다(에스겔 1:2).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다(열왕기하 24:17).
열왕기하의 마지막 단락에 따르면, 여호야긴이 사로잡힌 지 37년째 되던 해에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이 그를 옥에서 풀어 주었다. 에윌므로닥은 그의 자리를 다른 왕들보다 높이고 평생 왕의 식탁에서 먹게 했다(열왕기하 25:27-30). 예레미야 52장 31-34절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예레미야는 그를 "고니야"라 부르며 혹독하게 선포했다. 고니야가 여호와의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빼어 버리겠다고 했고(예레미야 22:24),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예레미야 22:30). 그런데 학개는 그의 손자뻘인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인장"으로 삼겠다고 말한다(학개 2:23). 많은 해석자는 이 구절을 예레미야의 선포와 대비해 읽는다.
역대상 3장은 "여고냐"의 아들로 스알디엘 등을 적는다. 에스더 2장 6절은 모르드개의 집안을 소개하면서 여고냐와 함께 사로잡혀 간 일을 언급한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장 11-12절의 예수 족보에 "여고냐"로 나오며, 족보는 그에게서 스알디엘과 스룹바벨로 이어진다. 열왕기하가 그의 석방으로 끝나는 것을 두고, 포로기에도 다윗 왕조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희망의 표지로 읽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해석과 논점
- 즉위 나이: 열왕기하 24장 8절은 18세, 역대하 36장 9절(개역개정)은 8세로 적는다. 사본 전승에 따라 18세로 읽는 경우도 있어, 필사 과정에서 생긴 차이로 보는 견해가 많다.
- 예레미야의 선포와 예수의 족보: 예레미야 22장 30절과 마태복음의 족보를 함께 읽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한 해석은 마태복음을 요셉을 통한 법적 족보로 본다.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났으므로 여고냐의 혈통적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해석은 흔히 누가복음 3장의 족보를 마리아 쪽 계보로 보는 견해와 함께 제시된다. 다른 해석은 "자식이 없겠고"라는 말을 그의 대에 왕위를 이을 자가 없다는 뜻으로 본다. 유대교 전승에는 그가 포로 생활 중 회개하여 선포가 거두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이는 성경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다.
- 역사 자료: 바벨론에서 발견된 배급 기록 점토판에 유다 왕 '야우키누'와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배급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록은 열왕기하 마지막 장과 관련된 자료로 자주 소개된다.
한국 교회에서
여호야긴을 독립된 주제로 다루는 설교는 많지 않다. 주로 열왕기하를 연속으로 강해하거나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설교할 때 언급된다. 설교에서는 대개 두 가지 면이 강조된다. 하나는 유다 멸망을 앞둔 왕들의 불순종이고, 다른 하나는 포로 37년 만의 석방에 담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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