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랴
인물 · 성경 인물
아달랴는 북이스라엘 왕 아합 집안 출신으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내가 되었고, 아들 아하시야가 죽은 뒤 왕족을 죽이고 약 6년 동안 유다를 다스린 여왕이다.
성경의 기록
아달랴의 이야기는 열왕기하 8장과 11장, 역대하 21~24장에 나온다. 열왕기하 8:18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고 기록하고, 열왕기하 8:26은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라고 소개한다. 이 결혼으로 남유다 왕실과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가가 혼인으로 이어졌다(아합과 이세벨 참고).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는 유다 왕이 되어 1년을 다스렸다. 역대하 22:3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다고 적는다.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예후의 반란 때 죽자(열왕기하 9:27), 아달랴는 왕의 자손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열왕기하 11:1). 그러나 요람 왕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역대하에서는 여호사브앗)가 아하시야의 어린 아들 요아스를 빼내어 숨겼다.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지냈고, 그동안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다(열왕기하 11:2-3).
7년째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호위병들과 함께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었다. 이 소리를 들은 아달랴는 성전에 와서 옷을 찢으며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라고 외쳤으나, 성전 밖으로 끌려 나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에서 죽임을 당하였다(열왕기하 11:13-16). 이어서 백성은 바알의 신당을 허물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열왕기하 11:18). 역대하 24:7은 그를 "그 악한 여인 아달랴"라고 부른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아달랴는 다윗의 왕조가 다스린 유다에서 다윗 가문이 아닌 사람으로서 왕위에 오른 유일한 통치자이며,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다. 열왕기는 다른 왕들에게 쓰는 즉위 정형구(즉위 나이, 다스린 햇수, 평가)를 아달랴에게는 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경 기자가 그의 통치를 정당한 왕위로 보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학자가 많다. 이 이야기는 다윗의 후손이 끊어질 위기에서 한 아이가 살아남아 왕통이 이어진 사건으로 읽히며, 흔히 다윗 언약과 연결된다.
신약성경은 아달랴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해석과 논점
- 부모 문제: 성경은 아달랴를 "아합의 딸"이라고도 하고 "오므리의 손녀"라고도 한다. 히브리어의 '딸'은 넓게 '여자 후손'을 뜻할 수 있어서, 두 표현을 모순 없이 이해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어머니가 이세벨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성경은 이를 명시하지 않는다.
- 마태복음 족보: 마태복음 1:8은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라고 적어, 아하시야·요아스·아마샤 세 왕을 빠뜨린다. 일부 해석자는 이를 아합·아달랴 가문과의 혼인과 연결해 설명한다. 그러나 본문은 이유를 밝히지 않으며, 족보를 14대씩 맞추기 위한 생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후대 문학: 아달랴 이야기는 라신의 비극 「아탈리」(1691)와 헨델의 오라토리오 「아탈리아」(1733)의 소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아달랴는 주로 요아스 왕과 제사장 여호야다를 다루는 설교에서 함께 언급된다. 이런 설교는 대개 왕족을 죽인 아달랴의 악행과,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숨긴 여호세바·여호야다의 신앙을 대비시킨다. 우상 숭배가 혼인을 통해 유다 왕실에 들어온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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