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함락
성경 · 사건
예루살렘 함락은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함락되고 성전이 불탄 사건이다. 시드기야 왕 때 일어나 남유다 왕국이 끝나고 바벨론 포로 시대가 시작되었다.
성경 본문
예루살렘 함락은 열왕기하 25장, 역대하 36장, 예레미야 39장과 52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으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무너지고 성전이 불탔다.
시드기야 왕 9년 10월 10일에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성을 에워쌌다. 성 안에 기근이 심해진 가운데 11년 4월 9일에 성벽이 뚫렸다(열왕기하 25:1-4). 시드기야는 밤에 달아났으나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혀 립나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아들들이 그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는 두 눈이 뽑힌 채 놋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어 5월에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성전과 왕궁과 성읍의 집들을 불사르고 성벽을 헐었으며, 성전의 놋 기둥과 기구들을 가져갔다. 바벨론은 남은 땅에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웠으나 그가 살해되었고, 남은 무리는 애굽으로 내려갔다(열왕기하 25:22-26).
배경
이보다 앞서 여호야긴 왕 때 첫 침공이 있었다. 이때 왕과 귀족, 기술자들이 먼저 사로잡혀 갔다(열왕기하 24:10-16). 이 첫 함락은 바벨론 쪽 연대기 기록에 근거해 기원전 597년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그 뒤 바벨론이 왕으로 세운 시드기야가 반역하자(열왕기하 24:20) 바벨론이 다시 군대를 보냈다. 최종 함락이 기원전 587년인지 586년인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열왕기는 이 함락을 므낫세의 죄를 비롯해 언약을 저버린 결과로 설명한다(열왕기하 24:3-4). 역대기는 선지자들의 경고를 비웃은 데 대한 심판으로 보며, 땅이 안식을 누리는 70년에 관한 예레미야의 말이 이루어진 일로도 해석한다(역대하 36:15-21). 예레미야는 함락을 미리 경고했고, 포로들에게는 그 땅에서 평안을 구하라고 편지했다(예레미야 29장 4-14절). 예레미야애가와 시편 137편은 이 상실을 탄식하는 노래로 읽힌다. 스가랴 7-8장에는 함락과 관련된 달에 금식하던 관습이 나온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심판 너머의 회복과 새 언약도 예고했으며, 이 흐름은 바벨론 포로 이후의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으로 이어진다.
신약에서 마태복음의 족보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일을 시대를 나누는 기준으로 삼는다(마태복음 1:11-12). 예수는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며 그 멸망을 예고했다(누가복음 19:41-44, 21:20-24). 히브리서 8장은 예레미야의 새 언약 예언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며 그 예언을 인용한다.
해석과 논점
- 날짜와 숫자: 성전이 불탄 날을 열왕기하 25:8은 5월 7일, 예레미야 52:12는 5월 10일로 적는다. 사로잡혀 간 사람의 수도 열왕기하 24:14는 "만 명", 예레미야 52:28-30은 합계 4,600명으로 서로 다르다. 이 차이를 집계 대상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 70년: 예레미야 25:11-12의 70년을 어느 해부터 세는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다.
- 예수의 예고: 감람산 설교(마태복음 24장)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많은 해석자는 기원후 70년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한 일에서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고 본다. 세대주의는 그 가운데 일부를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일로 읽는다.
- 언약궤: 성경은 함락 때 언약궤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예레미야가 궤를 산에 감추었다는 이야기는 외경인 마카베오기하 2장에 나오며, 개신교 정경 본문과는 구분된다.
한국 교회에서
예레미야애가 3장의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다"는 고백은 찬송 「오 신실하신 주」의 바탕이 된 구절로 알려져 있다. 이 본문은 함락이라는 절망 속에서 소망을 말하는 대목으로 자주 설교된다. 나라를 잃은 경험이라는 점에서 한국 근대사와 견주어 풀이하는 설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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