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립
인물 · 성경 인물
산헤립은 기원전 8세기 말~7세기 초의 앗수르 왕이다. 유다 왕 히스기야 때 유다를 침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해 위협했으나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산헤립은 앗수르의 왕이다. 유다 왕 히스기야 때 유다를 침공했고 예루살렘을 위협했다. 성경 밖의 앗수르 기록에도 이름이 남아 있다. 학계는 대체로 그가 기원전 705~681년경에 다스린 것으로 보지만,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성경의 기록
주된 기록은 열왕기하 18~19장, 이사야 36~37장, 역대하 32장이다.
- 유다 침공: 산헤립은 히스기야 제14년에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빼앗았다(열왕기하 18:13). 히스기야는 라기스에 있던 산헤립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바쳤다(열왕기하 18:14-16).
- 예루살렘 위협: 산헤립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를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랍사게는 백성 앞에서 여호와를 의지하지 말라고 조롱했다(열왕기하 18:17-35).
- 기도와 예언: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성전에서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기도했다(열왕기하 19:14-19). 이사야는 산헤립이 이 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리라고 예언했다(열왕기하 19:32-34).
- 결말: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에서 18만 5천 명을 쳤고,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아갔다(열왕기하 19:35-36). 뒤에 그는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하다가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의 칼에 죽었다. 두 아들은 아라랏 땅으로 도망했고, 아들 에살핫돈이 왕위를 이었다(열왕기하 19:37). 이 대목 때문에 아라랏산 문서에서도 그의 이름이 나온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본문은 산헤립을 자기 힘을 자랑하는 왕으로 그린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정복당한 다른 민족의 신들과 같이 여겼다(열왕기하 19:10-13). 이 사건은 강대국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이사야서의 주제와 이어진다. 신약성경에는 산헤립이 언급되지 않는다.
해석과 논점
- 앗수르 기록: 산헤립의 원정을 적은 앗수르 비문(흔히 '산헤립 연대기'로 불린다)이 남아 있다. 이 비문에는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는 표현이 있지만, 예루살렘을 함락했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느웨 궁전에서 나온 라기스 함락 부조(돌에 새긴 그림)도 이 원정과 관련된 자료로 알려져 있다.
- 18만 5천 명의 죽음: 전통적으로 하나님이 직접 개입한 기적으로 읽는다. 일부 학자는 전염병 같은 원인을 함께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은 원인을 "여호와의 사자"라고만 말한다.
- 연대: 학계에서는 이 원정을 기원전 701년경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것을 "히스기야 제14년"과 맞추는 문제는 히스기야의 즉위 연대와 얽혀 있어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또 성경은 산헤립의 피살을 귀환 바로 뒤에 이어 적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원정에서 약 20년 뒤의 일로 알려져 있어, 본문이 그 사이의 시간을 생략한 것으로 읽는다.
- 니스록: 니스록이 어떤 신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교회에서
산헤립은 주로 히스기야 이야기 속에서 다뤄진다. 히스기야가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기도한 장면은 위기 속의 기도를 다루는 설교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앗수르 군대가 하룻밤에 무너진 장면은 교만한 권력이 무너진 예로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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