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르호보암

인물 · 성경 인물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로, 통일 이스라엘을 이어받았으나 북쪽 열 지파가 떨어져 나가면서 남유다 왕국의 첫 왕이 된 인물이다.

성경의 기록

르호보암은 솔로몬과 암몬 여인 나아마의 아들이다(열왕기상 14:21). 41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17년 동안 다스렸다고 기록된다.

열왕기상 12장과 역대하 10장에 따르면, 즉위 무렵 세겜에 모인 백성은 솔로몬이 지운 무거운 부역을 가볍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르호보암은 아버지를 섬기던 원로들에게 먼저 물었다. 원로들은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그는 함께 자란 젊은 신하들의 말을 따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하리라"고 답하였다. 이에 북쪽 열 지파가 반발하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웠다. 이 사건이 왕국 분열이며, 르호보암에게는 유다와 베냐민이 남았다. 그는 군대를 모아 북쪽을 치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의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열왕기상 12:21-24).

역대하 11장은 그가 여러 성읍을 요새로 만들었고, 북쪽의 제사장과 레위인이 유다로 내려왔다고 전한다. 그러나 나라가 강해진 뒤 율법을 버렸다고 기록한다(역대하 12:1). 재위 5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쳐서 성전과 왕궁의 보물, 그리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빼앗아 갔다. 르호보암은 그 자리를 놋 방패로 채웠다(열왕기상 14:25-28). 그가 죽은 뒤에는 아들 아비야(열왕기상에서는 아비얌)가 뒤를 이었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열왕기상은 왕국 분열을 솔로몬의 우상 숭배에 대한 심판으로 설명하며, 이는 선지자 아히야가 미리 예언한 일이었다(열왕기상 11:29-39). 그래서 백성의 요구를 거절한 일을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라고 적는다(열왕기상 12:15). 열왕기는 르호보암 시대의 유다가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악을 행했다고 평가한다. 역대하는 시삭의 침공 앞에서 왕과 지도자들이 스스로 겸비하여 완전한 멸망은 면했다는 점을 함께 기록한다(역대하 12:6-12).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장 7절의 예수 그리스도 족보에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라는 구절로 등장한다.

해석과 논점

  •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분열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록과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판단이 함께 나온다. 이 때문에 이 본문은 섭리와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다루는 예로 자주 읽힌다.
  • 두 역사서의 강조점: 열왕기는 유다의 죄를 주로 부각한다. 역대하는 겸비와 부분적 구원,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였다"(역대하 12:14)는 내면의 평가를 덧붙인다.
  • 연대와 시삭: 즉위 연대는 학자에 따라 기원전 931년, 922년 무렵 등으로 다르게 제시된다. 시삭은 애굽의 쇼센크 1세로 보는 견해가 널리 알려져 있다.
  • 흔한 덧붙임과의 구분: 설교에서는 젊은 신하들을 경솔한 젊은 세대 전체의 상징으로 일반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이 문제 삼는 것은 나이 자체보다 백성의 짐을 덜어 주지 않으려 한 태도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르호보암 이야기는 교회학교 공과에서 '나라가 둘로 나뉨' 단원으로 다뤄진다. 이때 이름이 비슷한 여로보암과 함께 소개된다. 설교에서는 조언을 분별하는 일, 지도자의 섬김, 그리고 금 방패를 놋 방패로 바꾼 일이 상징하는 '잃어버린 영광과 겉모양만 남은 신앙'이 주제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함께 보기 8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

로그인하고 토론에 참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