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
인물 · 성경 인물
아사는 분열 왕국 시대 남유다의 세 번째 왕이다. 우상을 없애는 개혁으로 성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말년에는 아람과 동맹하고 선견자를 가두어 책망을 받았다.
성경의 기록
아사는 르호보암의 손자이고 아비얌(역대기에서는 아비야)의 아들이다. 왕국 분열 뒤 남유다의 세 번째 왕이 되었으며, 예루살렘에서 41년 동안 다스렸다(열왕기상 15:9-10). 그의 생애는 열왕기상 15:9-24에 짧게 실려 있고, 역대하 14~16장에 더 자세히 실려 있다.
- 종교 개혁: 아사는 남창을 쫓아내고 우상을 없앴다. 또 아세라 상을 만든 마아가를 태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열왕기상 15:12-13).
- 구스 사람 세라와의 전쟁: 역대기에 따르면 아사는 큰 군대를 앞에 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고, 이 싸움에서 이겼다(역대하 14:9-15).
- 언약 갱신: 오뎃의 아들 아사랴가 예언하자 아사는 개혁을 넓혔다. 이어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찾겠다는 언약을 맺었다(역대하 15장).
- 아람과의 동맹: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여 길을 막았다. 그러자 아사는 성전과 왕궁의 은금을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 바아사를 치게 했다(열왕기상 15:16-22).
- 말년: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를 책망했다. 아람 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사는 노하여 하나니를 옥에 가두고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을 학대했다. 39년에 발에 병이 들었는데, 역대기는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고 기록한다(역대하 16:7-12). 그가 죽은 뒤 아들 여호사밧이 왕위를 이었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열왕기는 아사를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평가한다(열왕기상 15:11). 다만 산당(언덕 위의 예배 처소)은 없애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역대기는 아사의 생애를 하나님을 의지할 때와 사람을 의지할 때로 나누어 대비한다. 하나니의 말 가운데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대하 16:9)가 이 대비를 요약한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7-8의 예수 족보에 이름이 나온다. 오래된 그리스어 사본 가운데 일부에는 이 이름이 "아삽"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석과 논점
- 산당 문제: 역대하 14:3, 5는 아사가 산당을 없앴다고 하고, 15:17은 없애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여러 풀이가 있다. 없앤 것은 이방 신의 산당이고 남은 것은 여호와를 섬기던 산당이었다고 보기도 하고, 유다와 북쪽 지역을 구분한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 연대 문제: 역대하 16:1은 바아사가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올라왔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열왕기상 16:8에 따르면 바아사는 아사 26년 무렵에 이미 죽은 것으로 계산된다. 이 차이를 두고 왕국 분열 때부터 센 햇수로 보는 견해와 필사 과정의 오류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 의원 문제: 역대하 16:12를 의료 자체를 부정하는 말로 읽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흔히 하나님을 찾지 않은 태도를 문제 삼은 말로 해석한다. 당시 의원이 이방 주술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드는 해석도 있다.
- 마아가와의 관계: 마아가는 본문에 아사의 "어머니"로 나온다. 그러나 열왕기상 15:2에서 아비얌의 어머니로도 소개되므로, 할머니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교회에서
아사는 설교에서 흔히 "처음은 좋았으나 끝이 아쉬웠던 왕"으로 소개된다. 이때 신앙의 초심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나 위기 때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주제가 된다. 역대하 16:9는 기도회나 헌신을 다짐하는 자리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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