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과 부정
성경 · 개념·용어
정결과 부정은 구약 율법에서 사람·짐승·물건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가르는 구분이다. 신약은 이를 마음의 정결과 그리스도를 통한 깨끗하게 하심으로 이어 받는다.
성경 본문과 내용
정결과 부정의 규정은 레위기에 가장 많이 모여 있다. 레위기 10:10은 제사장에게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결한 것을 분별"하라고 명한다. 이어지는 장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1장: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을 나눈다. 이를 흔히 음식 규례라고 부른다.
- 12장: 출산한 여인이 정결해지는 절차를 정한다.
- 13~14장: 피부병과 옷·집에 생긴 곰팡이 같은 얼룩을 진단하고, 나은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정한다.
- 15장: 몸에서 나오는 유출을 다룬다.
민수기 19장은 시체를 만져 생긴 부정을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섞은 물로 씻는 규정을 담고 있다.
배경과 낱말
히브리어 '타호르'는 정결하다, '타메'는 부정하다는 뜻이다. 신약 헬라어에서는 '카타로스'와 '아카타로스'가 같은 구분을 나타낸다. 여기서 부정은 위생상 더럽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성막에 나아가거나 거룩한 음식을 먹기에 알맞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부정이 곧 죄는 아니다. 출산이나 장례처럼 마땅한 일로도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부정한 상태는 저녁까지 기다리기, 물로 씻기, 정해진 제사로 해소된다. 레위기 15:31은 이 규정이 이스라엘이 성막을 더럽히고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힌다. 레위기 11:44-45의 "너희는 거룩하라"는 명령이 이 규정들의 바탕을 이룬다.
신약에서의 의미
예수는 부정을 옮긴다고 여겨지던 피부병 환자를 손으로 만져 고쳤다(마가복음 1:40-42). 피를 흘리던 혈루증 여인이 그의 옷에 손을 댔을 때도 이를 꾸짖지 않았다. 마가복음 7장 18-19절에서 예수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라고 말하고, 복음서 기자는 이를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신 것으로 풀이한다. 이어 마가복음 7장 21-23절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환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사도행전 10:15)는 말씀을 듣는다. 그 뒤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간다. 이 사건은 이방인을 부정하게 여기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계기로 읽힌다. 히브리서 9:13-14는 암송아지의 재가 육체를 정결하게 하는 데 견주어, 그리스도의 피가 양심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한다.
해석과 논점
짐승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눈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다. 위생을 위한 규정이라는 설명, 질서와 온전함을 나타내는 상징이라는 설명, 이웃 민족의 이방 제의와 구별하려 했다는 설명 등이다. 성경 본문 자체는 이유를 밝히지 않으므로 어느 설명도 확정할 수 없다.
또 성경의 '나병'(히브리어 차라아트)을 오늘날의 한센병과 같은 병으로 보는 이해가 흔하다. 그러나 이 낱말은 여러 피부 질환과 옷·벽의 얼룩까지 함께 가리키므로 같은 병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교단별 적용은 다음과 같이 갈린다.
- 개혁파·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9장)을 따라 이 규정을 의식법(제사와 예식에 관한 율법)으로 분류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다고 본다.
- 감리교·성결교·침례교·순복음 등 대부분의 개신교회도 음식 규정을 지금 지켜야 할 법으로 보지 않는다.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레위기 11장의 음식 구분을 건강과 관련된 원리로 여겨 지금도 부정한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도록 가르친다.
- 사도행전 15장 28-29절의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금하는 결정은 해석이 나뉜다. 당시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함께 지내기 위한 조치로 보는 견해가 있고, 지금도 지킬 규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정결'은 주로 도덕적·영적 의미로 쓰인다. 시편 51:10의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와 고린도후서 7장 1절이 회개와 성화를 다루는 설교에 자주 인용된다. 사도행전 10장은 이방인 선교와 편견을 넘어서는 일을 다루는 설교 본문으로 흔히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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