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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

성경 · 개념·용어

긍휼(矜恤)은 불쌍히 여겨 돌본다는 뜻으로, 성경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과 행동,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을 본받아 베푸는 자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경 본문

개역개정에서 '긍휼'은 구약과 신약에 두루 나온다. 대표적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원어와 배경

히브리어에서 '긍휼'로 주로 옮겨지는 낱말은 '라함'(불쌍히 여기다)과 명사 '라하밈'이다. 이 낱말은 '태'(레헴)와 어근이 같은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자식에게 품는 깊은 애정에 빗대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언약에 근거한 신실한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는 개역개정에서 대개 '인자'나 '인애'로 번역된다. 그러나 칠십인역은 헤세드를 그리스어 '엘레오스'로 자주 옮겼고, 이 때문에 호세아 6:6의 '인애'가 마태복음에서는 '긍휼'로 나타난다. 신약의 '엘레오스'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돕는 것을 뜻한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할 때 쓰인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본래 '창자'에서 나온 말로, 속에서부터 우러나는 연민을 나타낸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구약에서 긍휼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운" 분으로 계시되고(출애굽기 34장 6절), 죄를 지은 백성이 멸망하지 않는 근거로 그분의 긍휼이 제시된다. 신약은 이 긍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고 말한다. 예수는 병자를 고치고 죄인과 함께 식사하며 긍휼을 실천했다. 바디매오와 같은 이들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의 세리도 같은 기도를 드렸다.

동시에 긍휼은 하나님께 긍휼을 입은 사람이 이웃에게 베풀어야 할 태도로 요구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자비를 베푼 자"가 참 이웃으로 제시되고, 용서하지 않는 종 비유는 긍휼을 받고도 베풀지 않는 사람을 꾸짖는다. 히브리서 4:16은 신자가 긍휼을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권한다.

해석과 논점

  • 긍휼과 구원의 관계: 마태복음 5:7과 야고보서 2:13은 사람이 베푸는 긍휼과 하나님께 받는 긍휼을 나란히 둔다. 개혁주의 전통은 대체로 사람의 긍휼을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서 나오는 열매로 읽는다. 천주교는 굶주린 이를 먹이는 일 등을 '자비의 활동'으로 정리하여 신앙생활의 실천으로 강조해 왔다. 존 웨슬리는 '경건의 행위'와 함께 '자비의 행위'를 은혜의 수단으로 가르쳤다.
  • 예정론 논쟁: 로마서 9장의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는 예정론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칼빈주의는 이 구절을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읽는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방식에 관한 말씀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 은혜와의 구분: 설교에서는 흔히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복을 주시는 것이고, 긍휼은 마땅히 받을 벌을 거두시는 것"이라고 구분한다. 이것은 설명을 돕기 위한 정리이며, 성경이 두 낱말을 늘 이렇게 엄격히 나누어 쓰는 것은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주여,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라는 표현이 통성기도와 대표기도에서 자주 쓰인다. 고대 교회에서 내려온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키리에 엘레이손)는 대한성공회를 비롯해 예전을 중시하는 교회의 예배 순서에 들어 있다. 일부 교회는 구제와 이웃 돌봄 사역을 '긍휼 사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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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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