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역사
파문은 교회가 중대한 죄나 그릇된 가르침을 이유로 신자를 교회의 교제와 성례 참여에서 끊어 내는 처벌이다. 한국 개신교 교회법에서는 같은 처벌을 대개 '출교'라 부른다.
배경
파문(破門)은 본래 '스승의 문하에서 내쫓는다'는 뜻의 한자어이다. 교회사에서는 라틴어 엑스코무니카티오(excommunicatio, '교제 밖으로 내보냄')의 번역어로 쓰인다. 한국 천주교와 역사서는 주로 '파문'이라는 말을 쓰고, 한국 개신교 교회 헌법은 같은 처벌을 대개 '출교(黜敎)'라 부른다.
교회는 다음 구절을 이 처벌의 성경적 근거로 들어 왔다.
- 마태복음 18:15-17: 죄지은 형제를 권면하고 교회가 말해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한다.
- 고린도전서 5:1-13: 음행한 자를 공동체에서 내쫓으라고 한다.
- 디도서 3장 10절: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뒤에는 멀리하라고 한다.
초대교회는 배교·살인·간음 같은 중대한 죄를 지은 신자를 성찬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공적인 참회 기간을 거친 뒤 다시 받아들였다.
전개
중세에 파문은 교회 안의 징계를 넘어 정치적인 무게를 지니게 되었다.
- 1054년: 교황 사절 훔베르트 추기경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미카엘 케룰라리우스 쪽이 서로를 파문했다. 이 일은 동서 교회 분열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꼽힌다.
- 1076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했다. 하인리히는 이듬해인 1077년 카노사에서 용서를 구했다.
- 교회는 개인을 넘어 한 지역 전체의 성례 집행을 멈추는 성무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종교개혁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 1520년: 교황 레오 10세가 교서 「주여, 일어나소서」(Exsurge Domine)로 마르틴 루터에게 주장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루터는 그해 12월 이 교서를 불태웠다.
- 1521년: 루터가 파문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황의 파문권은 거부했지만 권징, 곧 교회가 교인의 죄를 바로잡는 징계 자체는 유지했다.
- 장 칼뱅은 제네바에서 목사와 장로로 이루어진 치리회를 통해 성찬 참여 정지 등의 징계를 시행했다.
- 벨직 신앙고백(1561)은 권징을 참된 교회의 표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0장은 교회의 견책을 권면, 성찬 참여 정지, 출교의 단계로 정리했다.
- 재세례파는 1527년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에서 '추방'(ban)을 공동체의 거룩함을 지키는 수단으로 규정했다. 이 전통은 오늘날 아미시 공동체의 사회적 기피 관행으로 이어진다.
결과와 영향
1965년 12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와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는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이 선언에서 1054년의 상호 파문을 교회의 기억에서 지운다고 밝혔다. 오늘날 천주교 교회법은 파문을 영원한 단죄가 아니라 회개를 이끌기 위한 '치유적 벌'로 설명한다. 또 배교나 이단 같은 몇몇 행위에는 별도의 선고 없이 자동으로 파문이 따른다고 규정한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출교가 권징의 가장 무거운 단계에 해당한다. 장로교는 당회·노회·총회의 재판 절차를 거쳐 책벌을 내린다. 책벌의 이름과 단계는 교단마다 다르며, 견책·수찬정지·정직·면직·출교 등으로 나뉜다. 한편 다른 단체의 교리를 판단하는 이단 규정과, 자기 교단 소속 교인이나 목회자에게 내리는 출교는 서로 구분되는 절차이다.
평가
파문을 옹호하는 쪽은 이 제도가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고 죄지은 사람의 회개와 회복을 이끄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 비판하는 쪽은 중세에 파문이 정치적 무기로 남용되었다고 지적한다. 또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는 교인이 다른 교회나 교단으로 쉽게 옮겨 갈 수 있어 출교의 실효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출교가 교회 분쟁에서 반대편을 몰아내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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