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과 기사
성경 · 개념·용어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과 능력을 드러내려고 행하신 놀라운 일을 함께 이르는 성경의 짝말이다. 구약은 주로 출애굽 사건에, 신약은 예수와 사도들의 사역에 이 말을 쓴다.
성경에 나오는 곳
이 짝말은 구약에서 주로 출애굽을 가리킬 때 쓰인다. 출애굽기 7:3에서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이런 일을 많이 행하겠다고 말씀하고, 이 약속은 열 가지 재앙으로 이어진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이 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한다(신명기 4:34, 6:22, 34:11). 시편 135:9와 예레미야 32:20-21도 출애굽 때의 일을 같은 말로 회고한다.
신약에서는 예수의 사역(사도행전 2:22)과 사도들의 사역에 이 말을 쓴다(사도행전 2:43, 5:12, 14:3, 15:12). 바울은 자기 사역을 설명하면서 이 말을 썼다(로마서 15:19, 고린도후서 12:12). 히브리서 2:4는 하나님이 이런 일로 구원의 말씀을 증언하셨다고 말한다. 반대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도 이런 일을 행하여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마가복음 13:22, 데살로니가후서 2:9).
낱말과 배경
'이적(異蹟)'은 기이한 행적을, '기사(奇事)'는 기이한 일을 뜻한다. 한국어 성경에서 같은 원어 짝말이 '이적과 기사', '표적과 기사'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옮겨졌다.
- 히브리어: '오트'는 무엇을 가리키는 표나 증거를 뜻한다. 무지개(창세기 9:13)나 할례(창세기 17:11)에도 이 낱말을 쓴다. '모페트'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나 징조를 뜻한다.
- 그리스어: '세메이온'(표적)은 그 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테라스'(기사)는 그 일이 주는 놀라움에 무게를 둔다. 신약에서 '테라스'가 홀로 쓰이지 않고 늘 '세메이온'과 함께 쓰인다는 점이 자주 지적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성경에서 이적과 기사는 놀라움 자체보다 그 일을 행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낸 사람과 말씀을 가리키는 데 뜻이 있다. 구약에서 출애굽의 이적은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사건으로 기억된다. 신약은 이 언어를 이어받아 예수와 사도들의 사역을 하나님이 행하신 새 구원의 일로 설명한다.
성경은 이런 일 자체를 참됨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신명기 13:1-3은 선지자가 이적을 보여도 다른 신을 따르자고 하면 따르지 말라고 한다. 예수도 표적을 보아야만 믿으려는 태도를 꾸짖었다(요한복음 4:48). 요한복음은 이적을 믿음으로 이끄는 '표적'으로 묶어 서술한다. 이에 대해서는 요한복음의 일곱 표적 문서에서 다룬다.
해석과 논점
가장 큰 논점은 이적과 기사가 오늘날에도 계속되느냐이다. 이 논쟁은 은사 중지론과 지속론 문서에서 자세히 다룬다.
- 중지론: 개혁주의 전통의 일부는 이적과 기사를 사도와 계시를 확증하는 표로 본다. 그래서 성경이 완성된 뒤로는 그 역할이 끝났다고 이해한다.
- 지속론: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는 성령의 은사와 함께 이적과 기사가 오늘도 계속된다고 본다. 1980년대 미국의 존 윔버 등은 이른바 '표적과 기사' 운동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견해 사이에는 여러 중간 입장이 있다. 같은 교단 안에서도 강조점이 다르다. 한편 성경은 이적을 많이 경험하면 믿음이 더 크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렇게 이해하는 경우가 있어, 본문의 경고와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러 교단에서 나온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부흥회와 신유 집회에서 이적과 기사를 구하는 기도가 자주 드려졌다. 1920년대 김익두 목사의 집회는 신유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순절 계열과 성결 계열은 신유를 신앙 고백의 한 부분으로 강조해 왔다. 장로교는 이 주제를 비교적 신중하게 다루는 편이다.
교단들의 이단 연구에서는 신명기 13장과 마가복음 13:22를 근거로 이적과 기사 주장을 분별해야 한다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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