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럇여아림
성경 · 지명
기럇여아림은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에 있던 성읍이다. 블레셋에서 돌아온 언약궤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전까지 아비나답의 집에 머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 본문
- 정복 시대: 여호수아 9:17에서 기브온 사람의 네 성읍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여호수아 15:9과 15:60, 18:14-15에서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는 성읍으로 적혀 있다.
- 사사 시대: 사사기 18:12에 따르면 단 지파가 북쪽으로 옮겨 가던 중 이곳 서쪽에 진을 쳤고, 그 자리를 '마하네단'(단의 진영)이라 불렀다.
- 언약궤의 체류: 언약궤가 블레셋에서 벧세메스로 돌아왔으나 그곳 사람들이 궤를 들여다보다 죽는 일이 있었다(사무엘상 6:19). 벧세메스 사람들은 기럇여아림에 사람을 보냈고,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궤를 산 위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았다. 아비나답은 아들을 구별하여 궤를 지키게 했다(사무엘상 6:21-7:1). 궤는 이곳에 20년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사무엘상 7:2)고 기록되어 있다.
- 다윗의 운반: 다윗은 '바알레유다'에서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옮겼다. 그 길에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궤를 붙들었다가 죽었다(사무엘하 6:1-11, 역대상 13:5-14). 역대하 1:4도 다윗이 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옮겨 왔다고 적는다.
- 그 밖의 기록: 예레미야 26:20은 여호야김 왕에게 죽임을 당한 선지자 우리야를 이곳 출신으로 소개한다. 느헤미야 7:29에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이 성읍 사람들이 있다. 같은 명단이 에스라 2:25에도 나오는데, 히브리어 표기가 조금 다르다.
이름과 위치
히브리어 이름은 '숲의 성읍'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른 이름인 '바알라', '기럇바알'(바알의 성읍), '바알레유다'에 '바알'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가나안 시대 바알 숭배와 관련된 옛 이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위치는 예루살렘 서쪽 아부 고시 마을 부근의 언덕(데이르 엘아자르)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다만 고고학적 판단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기럇여아림은 언약궤가 실로를 떠난 뒤 예루살렘에 자리 잡기 전까지 머문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가 중심에서 밀려나 있던 시기를 보여 주는 장소로 읽힌다. 20년 뒤 사무엘이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사무엘상 7:3-6)이 바로 이어진다.
시편 132:6의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를 이 성읍과 연결하는 주석이 많다. '나무 밭'이 '숲'이라는 이름과 통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는 이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해석에서는 궤가 상징하던 하나님의 임재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 이어진다고 보는 흐름이 있다.
해석과 논점
- 실로로 돌아가지 않은 까닭: 본문은 궤가 왜 실로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실로가 이 무렵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추론은 예레미야 7:12, 시편 78:60 등에 근거한 해석이다.
- 아비나답의 신분: 본문은 아비나답을 레위인이라고 밝히지 않는다. 그가 레위인이었다는 설명은 후대 전승과 일부 주석의 추정이다.
- '20년'의 범위: 사무엘상 14:18에서 사울 때에 궤가 언급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20년이 언제까지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해석이 갈린다. 이 구절의 칠십인역은 '궤' 대신 '에봇'으로 읽는다.
- 복을 받은 집: 사무엘하 6:11에서 궤로 말미암아 복을 받았다고 기록된 집은 오벧에돔의 집이다. 아비나답의 집에 대해서는 본문이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는 사무엘상 7:2의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가 영적 회복과 사모함을 강조하는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웃사 사건은 민수기 4:15이 정한 운반 방식, 곧 고핫 자손이 채로 궤를 메는 방식을 따르지 않은 일과 연결된다. 그래서 예배와 섬김의 질서를 말할 때 흔히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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