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야 (선지자)
인물 · 성경 인물
우리야는 유다 왕 여호야김 때 기럇여아림 사람 스마야의 아들로, 예레미야와 같은 심판 예언을 하다가 애굽으로 피했으나 끌려와 왕의 칼에 죽은 선지자이다. 예레미야 26장에만 나온다.
성경의 기록
우리야는 예레미야 26장에만 나온다. 이 장은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른 초기에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심판을 예언한 사건을 전한다(예레미야 26:1-6). 그 일로 예레미야는 죽을 위기에 몰렸다. 몇몇 장로가 예레미야를 변호했는데, 히스기야가 선지자 미가의 예언을 듣고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전례를 근거로 들었다(예레미야 26:17-19). 우리야 이야기는 이 대목 바로 뒤에 놓여 있다.
본문에 따르면 우리야는 기럇여아림 사람 스마야의 아들이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였고, 그 내용은 예레미야의 말과 같이 예루살렘 성과 유다 땅을 쳐서 한 예언이었다(예레미야 26:20). 기럇여아림은 언약궤가 한동안 머물렀던 성읍으로 알려져 있다(사무엘상 7:1-2).
여호야김 왕과 용사들과 방백(고관)들이 그 예언을 듣자 왕은 그를 죽이려 하였다. 우리야는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였다(예레미야 26:21). 왕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 그를 끌어오게 하였다(예레미야 26:22). 결국 우리야는 왕 앞으로 끌려와 칼에 죽었고, 그 시체는 평민의 묘지에 던져졌다(예레미야 26:23). 바로 다음 절은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백성의 손에 죽지 않게 했다고 전한다(예레미야 26:24).
성경 안에서의 의미
같은 내용을 예언한 두 선지자의 운명이 나란히 대비된다. 예레미야는 아히감의 보호로 살아남았고, 우리야는 죽임을 당하였다. 본문은 이 대비를 통해 여호야김 때 선지자가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었는지 보여 준다. 히스기야가 미가의 예언 앞에서 보인 태도와 여호야김의 태도도 이로써 대조된다.
신약성경은 우리야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칼에 죽임을 당하"였던 이들을 이름 없이 언급한다(히브리서 11장 33-38절). 일부 주석가는 이 구절의 배경에 우리야 같은 선지자들의 경우가 있다고 보지만, 본문이 우리야를 직접 가리키지는 않는다.
해석과 논점
- 이야기의 화자: 우리야 이야기를 누가 말한 것인지는 해석이 갈린다. 예레미야에게 불리한 선례로 반대편이 꺼낸 말로 보는 견해가 있고, 기자(본문을 기록한 사람)가 덧붙인 설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도피에 대한 평가: 본문은 우리야가 "두려워" 도망했다고만 적을 뿐, 그 행동을 옳다거나 그르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의 도피를 믿음이 약했던 것으로 해석하는 설교도 있다. 그러나 이는 본문 밖의 평가이다.
- 라기스 서신과의 관련: 고고학에서 발견된 라기스 서신에는 애굽으로 내려간 군 지휘관과 "선지자"가 언급된다. 일부 학자가 이를 우리야 사건과 연결하려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서신의 연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확인되지 않은 추정으로 여겨진다.
- 동명이인: 개역한글에서 "우리야"라는 이름은 여러 사람에게 쓰인다. 아하스 때의 제사장 우리야(열왕기하 16:10-16, 이사야 8:2), 느헤미야 시대 므레못의 아버지(느헤미야 3:21), 에스라 곁에 선 사람(느헤미야 8:4)이 있다. 마태복음 1:6의 "우리야의 아내"는 다윗 시대의 헷 사람 우리아를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이 문서의 선지자와 다른 사람이다.
한국 교회에서
우리야는 성경에 한 번만 나오는 인물이다. 그래서 단독 주제로 설교되거나 교회학교 공과에 실리는 일은 드문 것으로 보인다. 주로 예레미야 26장을 강해할 때, 예레미야가 받은 보호와 대비되는 사례로 함께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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