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
성경 · 지명
벧세메스는 '태양의 집'이라는 뜻의 구약 지명이다. 주로 유다 서쪽 경계의 제사장 성읍을 가리킨다. 블레셋에서 돌려보낸 언약궤가 처음 도착한 곳이고, 유다 왕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에 패한 곳이기도 하다.
성경 본문
구약에서 '벧세메스'라는 이름은 여러 곳에 쓰인다. 대부분은 유다 지파의 북서쪽 경계에 있던 성읍을 가리킨다.
- 경계와 제사장 성읍: 여호수아 15:10에 유다 땅의 경계로 나온다. 여호수아 21:16에는 아론 자손 제사장에게 준 성읍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여호수아 19:41에 나오는 단 지파의 '이르세메스'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 언약궤의 귀환: 사무엘상 6장에 나오는 사건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재앙을 겪은 뒤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젖 나는 소 두 마리에게 끌게 했다. 소들은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벧세메스로 갔다(사무엘상 6:12). 밀을 거두던 주민들은 이를 보고 기뻐했다. 레위인이 궤를 내렸고, 주민들은 수레를 쪼개 땔감으로 삼고 소를 번제로 드렸다. 그러나 주민들이 궤를 들여다본 까닭에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다(사무엘상 6:19). 이후 주민들은 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냈다(사무엘상 6:21-7:1).
- 왕정 시대: 솔로몬의 행정 구역에 속했다(열왕기상 4:9). 유다 왕 아마샤는 이곳에서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스(역대하에서는 요아스)와 싸우다 사로잡혔다(열왕기하 14:11-13, 역대하 25:21-23). 아하스 때에는 블레셋에게 빼앗겼다(역대하 28:18).
- 같은 이름의 다른 곳: 잇사갈 지파(여호수아 19:22)와 납달리 지파(여호수아 19:38, 사사기 1:33)에도 벧세메스가 있었다. 예레미야 43:13의 "애굽 땅 벧세메스"는 흔히 애굽의 태양 숭배 도시 헬리오폴리스(온)를 가리킨다고 본다.
배경
히브리어로 '벧'은 집, '세메스'는 해를 뜻한다. 그래서 이 이름이 가나안 시대의 태양 숭배와 관련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유다 벧세메스는 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야 사이의 소렉 골짜기 부근에 있었다. 그래서 두 세력이 맞닿는 경계 성읍이었다. 삼손의 고향 소라와도 가깝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벳셰메시 시 근처 유적으로 흔히 비정한다(지금의 어느 곳인지 추정해 정한다는 뜻).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벧세메스 사건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 주는 본문으로 읽힌다. 주민들은 "누가 능히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리요"라고 탄식했다(사무엘상 6:20). 민수기 4:15, 20은 성물을 함부로 만지거나 보는 것을 금한다. 언약궤를 붙든 웃사가 죽은 일(사무엘하 6:6-7)과 함께 이 금지를 보여 주는 예로 묶여 다루어진다. 신약은 벧세메스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기독교 해석에서는 이 사건을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는 가르침(히브리서 4:14-16)과 대비해 설명하기도 한다.
해석과 논점
- 죽은 사람의 수: 사무엘상 6:19의 숫자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서 "5만 70명"으로 읽힌다. 작은 성읍에 견주어 수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 때문에 70명으로 보는 학자가 많다. 번역본마다 옮긴 방식도 다르다.
- 죄의 성격: 궤를 열어 본 것인지, 경외 없이 바라본 것인지에 대해 해석이 갈린다.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다르게 전한다.
- 소의 걸음: 본문에서 소의 걸음은 재앙이 우연인지 하나님의 손인지 가리려고 블레셋이 세운 시험이다(사무엘상 6:9). 이를 헌신의 본보기로 읽는 것은 설교의 적용이며, 본문이 직접 말하는 내용은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는 새끼를 두고도 울면서 벧세메스로 곧장 간 두 소를 순종과 헌신의 비유로 자주 다룬다. 이때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라는 구절이 함께 인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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