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성경 · 지명
갈라디아는 소아시아(오늘날 튀르키예) 중부 내륙의 지역이자 로마 제국의 속주(屬州, 제국이 다스리던 행정 구역) 이름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갈라디아서를 보낸 교회들이 있던 곳이다.
성경에 나오는 곳
갈라디아는 신약성경에만 나온다.
- 사도행전: 바울 일행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다녔다고 두 차례 기록한다(사도행전 16:6, 사도행전 18:23). 각각 바울의 2차·3차 전도 여행 때의 일이다.
- 갈라디아서: 바울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다(갈라디아서 1:2).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갈라디아서 3:1)라며 다른 복음으로 돌아선 교인들을 꾸짖는다. 또 처음 이곳에 복음을 전한 때가 육체가 약하던 때였다고 회고한다(갈라디아서 4장 13-14절).
- 그 밖의 서신: 고린도전서 16:1은 예루살렘 성도를 돕는 연보(모금)를 갈라디아 교회들에도 부탁했다고 전한다. 디모데후서 4:10은 그레스게가 갈라디아로 갔다고 적는데, 일부 사본에는 이 지명이 '갈리아'로 되어 있다. 베드로전서 1:1은 편지를 받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갈라디아를 꼽는다.
배경
'갈라디아'라는 이름은 기원전 3세기에 유럽에서 소아시아로 건너와 정착한 켈트계 부족에게서 왔다. 헬라어로 이들을 '갈라타이'라 불렀고, 이들이 사는 땅이 '갈라디아'가 되었다. 서유럽의 갈리아인과 같은 계통의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중심 도시는 앙키라(오늘날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였다.
기원전 25년 무렵 로마는 이 지역을 속주로 편입하였다. 이때 남쪽의 비시디아·루가오니아 일부까지 속주에 포함되었으므로, 갈라디아 속주 안에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같은 도시도 들어 있었다. 이 도시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한 곳이다(사도행전 13~14장).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갈라디아는 이방인 교회가 세워진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곳 교회에서는 이방인 신자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쳤다(갈라디아서 2장 16절). 이 가르침은 칭의와 율법과 복음에 관한 신약의 중심 본문이 되었다. 같은 문제는 예루살렘 공의회(사도행전 15장)에서도 다루어졌다.
해석과 논점
바울이 편지를 보낸 '갈라디아 교회들'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두고 학자들의 견해가 나뉜다. 이는 교단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학계의 논쟁이다.
- 북갈라디아설: 켈트계 주민이 살던 북부 본래의 갈라디아 지방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 경우 교회는 2차 전도 여행 때 세워졌고(사도행전 16:6), 편지는 비교적 늦게 쓰였다고 본다.
- 남갈라디아설: 로마 속주 전체를 가리키며, 1차 전도 여행 때 세운 비시디아 안디옥·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 교회들이라고 본다. 이 견해를 따르는 일부 학자는 갈라디아서를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에 쓴, 바울의 가장 이른 편지로 보기도 한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정확히 어느 도시를 방문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어느 견해도 확정되지 않았다. 루스드라 출신인 디모데를 갈라디아 사람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이 논쟁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갈라디아는 주로 갈라디아서를 통해 알려져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라디아서 2:20)는 널리 암송되는 구절이다.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는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는 구절은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적 신앙으로 돌아서는 것을 경계하는 설교에 자주 인용된다. 마르틴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특히 아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 편지는 종교개혁 신학의 뿌리로 소개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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