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1세
인물 · 같은 말: 콘스탄티누스 대제
콘스탄티누스 1세(약 272~337)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한 로마 황제이다. 그의 시대에 교회는 박해받던 소수 집단에서 제국의 보호를 받는 종교로 바뀌었다.
생애
장군이자 부황제였던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와 헬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306년 아버지가 브리타니아에서 죽자 휘하 군대가 그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 뒤 여러 황제가 권력을 다투던 내전에 뛰어들어, 312년 로마 근교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물리쳤다. 이 싸움을 앞두고 하늘에서 십자가 표지나 그리스도를 뜻하는 글자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와 락탄티우스의 기록으로 전해지며, 두 기록의 내용은 서로 조금 다르다. 324년 동방의 황제 리키니우스를 꺾고 단독 황제가 되었다. 330년 비잔티움을 새 수도로 봉헌하였고, 이 도시가 뒤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렸다. 337년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기독교 공인: 313년 리키니우스와 함께 이른바 밀라노 칙령을 내려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박해 때 빼앗은 교회 재산을 돌려주게 하였다. 이로써 초대교회가 겪던 공적 박해가 끝났다.
- 니케아 공의회: 325년 아리우스 논쟁을 해결하려고 제국 전역의 주교를 소집하였다. 아리우스 논쟁은 성자가 피조물인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공의회는 아리우스주의를 배척하였고, 그 결정은 니케아 신경과 삼위일체 교리의 기초가 되었다.
- 교회 후원: 성직자에게 공적 의무 면제 같은 특권을 주었다. 예루살렘과 로마 등지에 큰 예배당을 세우도록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일요일 휴일 제정: 321년 '태양의 날'(일요일)을 법정 휴일로 정하였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의 교회사 교육과 설교에서 313년은 박해 시대가 끝난 전환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그의 일요일 휴일법은 안식일과 주일 논쟁에서 자주 거론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이 법과 이후 교회의 결정으로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장로교·감리교 등 대부분의 교단은 주일 예배가 사도 시대부터 있었다고 본다. 그 근거로는 사도행전 20:7, 고린도전서 16:2, 요한계시록 1:10이 제시된다. 또 니케아 공의회가 성경 목록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대중 사이에 퍼져 있으나, 교회사 학계는 이 공의회가 정경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본다.
평가
정교회는 그를 '사도와 동등한 성인'으로 공경한다. 서방 교회 전통도 대체로 교회를 박해에서 건져 낸 황제로 기억한다. 반면 국가와 교회가 결합하는 길을 열었다는 비판도 크다. 재세례파 전통의 신학자들은 이렇게 생긴 국가교회 체제를 '콘스탄티누스주의'라 부르며 교회가 권력과 특권에 기대게 된 출발점으로 본다. 한국에서도 이 비판은 교회와 정치의 관계를 논할 때 인용된다. 그의 개인 신앙에 대해서도 평가가 갈린다. 세례를 생애 말까지 미룬 점과 326년 아들 크리스푸스와 아내 파우스타를 죽게 한 일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니케아 공의회 뒤 아리우스를 복권하고 아타나시우스를 유배한 일도 그가 신학보다 제국의 통합을 앞세웠다는 해석의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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