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2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복음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한 말씀이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과의 관계, 이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와 함께 성령론과 교회론 논의에서 자주 다뤄진다.
문맥
요한복음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당일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난 장면의 일부이다. 제자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모여 있었다. 예수는 평강을 빌고 손과 옆구리를 보인 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며 제자들을 보낸다. 이어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하고, 23절에서는 죄를 사하고 그대로 두는 일에 대해 말한다. 이 자리에 도마는 없었다(24절). 개역한글의 "저희"는 오늘날 말로 '그들'이다.
"숨을 내쉬다"로 옮긴 그리스어 동사는 그리스어 구약(칠십인역)의 창세기 2:7과 에스겔 37:9에도 쓰였다. 창세기 2:7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장면이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가 이 구절을 새 창조를 암시하는 표현으로 읽는다.
해석
해석의 중심 물음은 이 구절과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이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이다.
- '요한의 오순절'로 보는 읽기: 요한복음이 사도행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성령 수여를 전한다고 본다. 적지 않은 신약학자가 이 견해를 취한다.
- 두 단계로 보는 읽기: 이때 성령이 실제로 주어졌다고 본다. 다만 이때의 수여는 새 생명과 사명을 위한 것이고, 오순절에는 증언을 위한 능력이 충만하게 임했다고 구분한다. 여러 복음주의 주석가가 이렇게 읽는다.
- 예고적 상징으로 보는 읽기: 예수가 떠나야 성령이 오신다고 한 말씀(요한복음 16:7)에 근거한다. 이 행동은 오순절에 이루어질 일을 미리 보여 준 표징이라고 본다.
논쟁과 쟁점
- 성령세례의 시점: 오순절주의와 일부 성결 전통은 제자들이 이때 이미 성령을 받았고,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따로 받았다고 본다. 이를 회심 이후의 구별된 체험이 성경에 근거한다는 논거로 삼는다. 개혁주의 쪽은 반론을 편다. 부활과 오순절 사이는 구속사(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한 번뿐인 과도기이므로, 이 일을 오늘날 신자가 따를 표준 경험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죄 사함의 권세: 천주교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래 22~23절을 고해성사의 근거로 가르친다. 성공회 공동기도서(1662년판)의 사제 서품 예식문에도 "성령을 받으라"는 말과 23절의 표현이 들어 있다. 루터교와 개혁교회 등은 이 권세를 복음 선포와 권징을 통해 교회에 맡겨진 직무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 성령의 나오심: 아우구스티누스 등 서방 신학자들은 이 장면을 성령이 아들에게서도 나온다는 가르침의 근거로 들었다. 정교회는 이를 영원한 나오심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성령을 보내신 일로 구분해 읽는다.
- 번역: 원문에는 '그들을 향하여'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따로 없다. 그래서 번역본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또 "성령" 앞에 관사가 없다는 점을 들어 성령의 은사 일부를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반면 문법만으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교회력 성서일과를 따르는 교회에서 이 구절은 정해진 주일마다 읽힌다. 개정 공동 성서정과에서는 요한복음 20:19-31이 해마다 부활절 둘째 주일 본문이고, 20:19-23은 가해(A년) 성령강림절의 복음서 본문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과 함께 설교되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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