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람
인물 · 성경 인물 · 같은 말: 여호람 (이스라엘 왕), 요람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구약성경에서 같은 시대에 다스린 두 왕의 이름이다.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을 가리키며, 개역개정에는 '요람'으로도 적혀 있다.
'여호람'이라는 이름은 흔히 '여호와는 높으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같은 시대에 유다와 북이스라엘에 이 이름을 가진 왕이 한 사람씩 있었다. 개역개정은 두 사람을 '여호람'과 '요람'으로 섞어 적는다. 역대하 17:8에는 같은 이름의 제사장도 나온다.
성경의 기록
유다 왕 여호람
여호사밧의 맏아들이다. 32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8년 동안 다스렸다(열왕기하 8:16-24, 역대하 21장). 아합의 딸 아달랴를 아내로 맞았고, 성경은 그가 아합 집안의 길로 행했다고 기록한다. 왕위가 굳어지자 여섯 아우와 일부 방백(고위 관리)을 죽였다(역대하 21:4). 재위 중에 에돔과 립나가 유다에서 떨어져 나갔다.
역대하는 그 밖에도 다음 일들을 전한다.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이었다. 딸 여호세바는 훗날 요아스를 숨겨 목숨을 건졌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요람)
아합의 아들로, 형 아하시야의 뒤를 이어 사마리아에서 12년 동안 다스렸다(열왕기하 3:1). 아버지가 세운 바알의 주상(돌기둥)은 없앴지만,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유다 왕 여호사밧, 에돔 왕과 함께 모압을 쳤고, 이때 엘리사가 물이 가득해질 것을 예언했다(열왕기하 3장). 아람과 싸우다 다쳐 이스르엘에서 치료받던 중 예후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의 시신은 나봇의 밭에 던져졌다(열왕기하 9:14-26).
성경 안에서의 의미
열왕기와 역대기는 유다 왕 여호람을 혼인으로 북이스라엘 왕가와 묶이면서 악을 받아들인 왕으로 그린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다윗에게 등불을 주겠다고 하신 약속 때문에 유다를 멸하지 않으셨다고 적는다(열왕기하 8:19). 그래서 이 대목은 다윗 언약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장면으로 읽힌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 1:8의 예수 족보에 '요람'으로 나온다.
이스라엘 왕 요람의 죽음은 아합 집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기록된다(열왕기하 9:25-26).
해석과 논점
- 연대: 열왕기하 1:17, 3:1, 8:16에 적힌 즉위 연도가 서로 맞지 않아 보인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흔히 공동 통치(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다스린 기간)를 가정해 이를 조화시킨다. 다른 학자들은 서로 다른 자료 전승에서 생긴 차이로 본다.
- 엘리야의 편지: 열왕기하 2장의 엘리야 승천은 여호람이 홀로 다스리기 전의 일로 읽힌다. 그래서 편지를 보낸 시점이 문제가 된다. 엘리야가 승천 전에 미리 써 두었다는 해석과, 실제 사건 순서가 기록 순서와 다르다는 해석 등이 있다.
- 마태복음 족보: 마태복음은 요람 다음의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를 건너뛰고 웃시야로 잇는다. 열네 대씩 맞추려는 구성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아합 집안과의 혼인과 연결해 설명하는 해석도 있다.
- 본문과 전승의 구분: 열왕기하 5~7장(나아만 이야기, 사마리아 포위)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은 흔히 요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본문이 그 이름을 밝히지는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여호람은 독립된 설교 주제로 자주 다뤄지는 인물은 아니다. 주로 성경통독이나 열왕기·역대기 강해에서 언급된다. 설교에서는 아달랴와의 혼인을 예로 들어 신앙과 혼인, 가정이 다음 세대에 끼치는 영향을 말할 때 인용되곤 한다. 아끼는 사람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역대하 21:20도 함께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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